한국 경제가 어려운 이유? Human capital을 못 갖춘 나라가 됐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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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bii research
한국 경제가 어려운 이유? 너네가 수출할 수 있는 상품을 못 만들어내니까
'보나마나 수학 못한다는 소리겠지', '코테만 통과하면 된다' 같은 인력들로 수출 상품을 만들어야 하니까
나라가 40년 동안 Human capital을 제대로 키워내지 못했으니까

회사와 따로 콘텐츠 제휴 계약을 맺고 운영되는 동아시아포럼(East Asia Forum)이라는 곳이 있는데, 인도가 빠르게 경제 성장을 하고 있지만 정작 지금처럼 교육을 대충하고 인적 자원에 대한 투자를 안 하면 고속 성장을 뒷받침할 수 없다는 지적을 내놓은 기고 글을 봤다.

대부분의 기고 글들이 연구 역량을 탄탄히 갖춘 분들의 글이기도 하고, 한국에 앉아서 해외 시장 상황을 쉽게 알기 어려울텐데, 우리 지면을 통해 공유하면 좋겠다 싶어서 제휴를 맺었는데, 이번 글은 읽으면서 요즘 한국 상황을 너무 잘 설명해주는 것 같아서 뒷 맛이 좀 씁쓸했다.

Ambika Chatterjee, 9, a fifth-grade student, who according to her father Subhasish Chatterjee, 52, shifted to a low fee charging private school from an elite school, waits for her father as he puts on his helmet to drop her to a school in Kolkata, India, 27 April 2022 (Photo: Reuters/Rupak De Chowdhuri).
출처=East Asia Forum

제조업 중심국가에서 탈출 못한지 40년째

귀국 후 지난 몇 년간 한국 사회에서 내가 느낀 것을 짧게 한 문장으로 요약해라면

경제 규모 대비 시장(의 인력, 인프라) 수준이 너무 심하게 낮다

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반도체 혁명, 자동차 혁신이라는 두 개의 바퀴로 수출 중심 국가로 성공적으로 탈바꿈했지만, 정작 내부에 있는 인력들의 교육 수준, 이해도 수준, 인프라 수준은 매우 열악한 상태인 것이, 정부가 발주하는 프로젝트들은 하나같이 지적 역량이 없는 티가 팍팍 나고, 영어로 번역해서 해외에 알려지면 조롱거리 밖에 안 된다. 대학들이 내놓는 시험 문제들도 국내 대학 박사 과정 수준이 해외 대학 학부 수준에 지나지 않는 경우도 많고, 한국의 교육 수준이 낮다는 것을 인지한 해외 대학들의 태도가 바뀌면서 점점 국내 대학 출신들의 해외 대학원 진출도 어려워지는 상황이 됐다.

왜 이렇게 엉망이 됐을까 싶어서 몇 년간 고민했었는데, 교육의 수준이 낮은 것은 ‘반값 등록금’을 비롯한 각종 교육부 규제와 왜곡된 형태로 그 규제 특화된 시스템을 운영할 수밖에 없는 대학들의 생존 구조, 대학 입시에 목을 매고 단순 암기식으로 구조화된 입시 시험 등등 교육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그 교육을 낳을 수밖에 없는 사회 총체적인 구조적 결함이 해결되지 못한채 지난 수십년을 흘러왔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What got you here won’t get you there

영어 표현 중에 오늘까지 성공한 방식이 내일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지적하는 말인데, 딱 한국 상황에 들어맞는 것 같다. 과거 고도성장기의 단순 암기식, 빠른 복제에 초점을 맞춘 사회·문화 구조, 교육 구조, 그에 따른 산업 구조가 더 이상 먹히지 않는 시대가 왔기 때문이다.

벤처 투자를 받겠다고 열심히 VC들을 만나러 다니던 시절, 나한테 했던 이야기 중 하나가 ‘이렇게 사업 모델 열심히 말씀하시고 다니면 누군가 베낄지도 모릅니다’, ‘스타트업은 속도전 아닌가요?’, ‘무조건 빨리 베껴서 남들보다 더 빨리 시장에 상품으로 내놓아야죠’라는 표현들을 들었는데, 그들이 1980년대 산업화 시대 사고 방식과 지식 수준으로 내 타게팅 알고리즘 사업을 봤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내가 생각하는 사업 모델을 구현한 곳은 여전히 구글, 메타 같은 글로벌 최상위권 빅테크 회사들 뿐이다. 장담컨대 한국에서는 앞으로 10년이 지나도 내가 2018년에 고민했던 데이터 사이언스 모델을 구현한 기업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이해를 해야 베끼기를 할 수 있을 것 아닌가.

인도, 성장 위주로 돌아가니 교육은 뒷전

윗 글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인도가 경제 성장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춘 탓에 늘어나는 인구들을 제대로 교육시키는 시스템을 못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도 인구 폭발기였던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 10여년간 초등학교가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눠 파행적으로 교육이 운영되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증가하는 인구에게 적절한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 정책 당국자들에게는 엄청난 고민이라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인도는 계급 사회, 최소한 계층 사회다보니 결국에는 상류층들이 교육의 기회를 더 많이 누리고, 하류층들은 교육 기회를 잃는 상황이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 좀 더 심해지면 저 곳도 미국의 사립, 공립 구분처럼 좋은 교육을 하는 일부 기관에만 인재와 자본이 몰리고, 대부분의 공공 교육은 엉망으로 돌아가는 상황이 될 것이다.

‘교육은 평등해야하는가’는 명제에 대해 민주주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야 당연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지만, 불과 150년 전만해도 양반들만, 그 중에서도 세도가 자제들만 교육으로 벼슬길에 나갈 수 있는 통로가 확보되는 반면, 나머지 계층의 사람들에게는 천자문, 동몽선습, 사자소학은 그저 까막눈을 면하기 위한 교육에 불과했었다. 말을 바꾸면, 교육이 낳는 결과물이 이미 불평등한 사회 구조 속에 구현된 탓에 결국 교육에 대한 접근성, 필요성 마저도 왜곡된 구조가 됐던 것이다.

그것이 일제시대, 해방기, 산업화 시대를 거치며 일반 교육으로 바뀌기는 했지만, 여전히 우리나라도 공공에서 제공해주는 교육은 수준이 낮고, 많은 경우 교육부의 정책을 따라가는 흉내만 내는 교육 기관들의 요식행위에 불과하다. 장학사 오는 날은 선생님이 질문하면 무조건 다 손을 들어야 한다고 예행 연습을 했던 세대라면 누구나 다 공감할 것이다.

출처=PeopleHum

Human capital을 못 키운지 40년

지난 코로나-19 팬데믹 시절, 모 중동 국가에는 어느 종교 시설 건물의 철문을 혀로 핡으면 코로나에 걸리지 않는다는 소문이 돌았다가 오히려 더 바이러스가 빠르게 확산됐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문명 국가 사람들이라면 그 나라 사람들을 바보라고 비웃겠지만, 아마 그 나라에 살고 있는 문명인이라면 같은 표현을 썼다가 맞아 죽었을지도 모른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다 자기가 잘났고, 틀렸다고 지적해주면 자기 행동을 반성하고 수정하기보다 ‘내가 아니라 네가 틀렸다’는 식으로 반박을 하기 때문이다. 그 반박이 더 심해져서 군중이 되면 ‘멍석말이’도 하고 ‘돌팔매질’도 한다.

지난 몇 년간 한국 사회에서 데이터 사이언스 프로젝트라는 것들이 하나같이 ‘혀로 핡기’ 수준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을 보고 충격을 담은 맹비난을 했더니 결국 나 자신도 수 차례 멍석말이를 당하고 돌팔매질을 당했다.

지난 정부 내내 황당하기 그지없이 운영되던 정부 프로젝트에 눈과 귀를 막고 살고 싶었는데, 이번 정부들어 정부 주요 당직자들이 뭔가 노력은 하지만 여전히 중앙 부처 사무관들을 비롯한 공무원 사회가 무능한 탓에 정권 관계자들의 목적이 전혀 달성되지 않는 것을 본다.

마치 내가 개발자들 뽑아서 타게팅 알고리즘 모델을 만들 수 있는 데이터 플랫폼이라도 만들자고 했던 것이 답답하게 속만 터지던 상황과 같아 보인다.

나는 결국 개발자들을 다 내보내고 나 혼자 웹사이트를 다시 만들고, 내가 할 수 있는 형태로 웹 개발 프로젝트를 변형해서 운영하기로 마음 먹었다. 정말로 개발자를 써야 한다면 그냥 인도에 있는 개발자들을 쓸 생각이고, 실제로 써 보기도 했다. 저 위의 동아시아포럼 기고 글처럼 10년 후에는 더 이상 인도에 좋은 개발자가 없으면 베트남이 됐건, 동유럽이 됐건 다른 나라 개발자들로 갈아타면 된다. 코드만 내가 관리하고 있으면 되잖아?

Human capital이 없으니 고급 시장에 진입을 못하는 나라

이번에 파두(FADU)의 부실상장 논란을 보면서, 저 기업의 기술력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인력이 꽤 있었다면, 저 기업과 경쟁할 수 있는 국내 기업들이 몇몇 있어서 서로간 경쟁 정보가 시장에 풀려 기술력에 대한 검증이 자동으로 됐었다면 저렇게 큰 논란이 됐을까는 생각을 해 봤다.

한국이 ‘기술력’이라고 쓰고 ‘기능력’에 해당하는 ‘빨리 베끼기’ 위주로 돌아가는 인력 풀을 갖고 있는 나라다보니, 아무도 저 분들의 기술력을 검증해주지 못했고, 덕분에 부실상장이라는 논란은 더더욱 확산됐다. 정말로 저 분들이 사기였다면 아예 사업체를 꾸리지도 못했을 것이고, 반대로 기술력이 탄탄한 회사면 반도체 업황이 나쁜 올해는 힘들어도 기술력이 탄탄하니까 내년에는 괜찮겠지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을텐데, Human capital을 못 키워놨기 때문에 이렇게 사회적 비용을 치르는 것이다.

한국의 Human capital 상황은 비단 파두 같은 기업에 대한 논란에 그치지 않는다.

웹소설이 웹툰화되는 과정에 대한 논문을 쓰고 있는 SIAI 학생 하나는 영어 실력이 부족한 탓에 한국어 논문들만 Literature review에 갖고 왔던데, 덕분에 보고 싶지도 않은 조잡한 논문들을 귀중한 논문 지도 발표에 언급하고 있더라. 나라의 수준이 낮다보니 그 언어로 만들어진 콘텐츠의 수준도 낮고, 결국 언어 장벽을 넘지 못한 모든 인력이 낮은 Human capital 체제 안에 맴도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 체제는 단순히 학계의 수준을 낮추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 곳곳에 퍼져 있다. 기업들이 뽑은 인력은 기술력을 검증할 역량이 부족하고, 언론 보도나 해외 기관 언급 같은 남들이 해 놓은 말에 의존하고, 그런 의존은 국내에서 검증할 역량이 안 되는 모든 콘텐츠들에 광범위하게 퍼져 ‘사기’를 대규모로 양산하게 됐다.

그저 일확천금이나 노리는 사람들을 현혹하고, 거짓을 담은 기업 홍보로 사업체를 꾸려야 회사를 키울 수 있는 시장, 그런 시장의 밑바닥에는 Human capital을 키우지 못한 나라의 한계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GDP가 성장하려면 1명, 1명의 인력이 내놓는 결과물의 가치가 커져야 한다

나라가 성장하려면 GDP가 성장해야 한다는 단순한 경제 논리를 확장하면, 인구를 x2, x3으로 빠르게 늘리지 않는 이상 결국엔 인재 1명이 만들어내는 결과물의 가치가 상승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런데, 한국은 ‘기능력’으로 대변되는 ‘빨리 베끼기’ 위주의 인력으로 그간 대부분의 산업을 운영해왔다. 당연히 우리 나라가 내놓는 결과물의 가치가 세계 시장에서 더 올라가기 어렵다. 거꾸로 경쟁사가 많아지는만큼 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고, 시간을 더 쓰는데도 불구하고 GDP는 줄어들게 된다.

한국이 그나마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산업 분야가 메모리 반도체와 자동차인데, 둘 중 하나만 휘청거려도 나라가 이렇게 힘든 상황이 됐다. 기업들 대출은 계속 증가한다는데 2024, 2025년에도 계속 반도체가 어려우면 어떻게 될까? 한국 GDP 대비 기업부채 ‘세계 3위’, 부채·부도 증가 속도는 2위, 원인은? – 파비리서치 (pabii.com) GDP 대비 기업부채 세계 1위 찍는게 그리 멀지 않을 수도 있다. 노키아가 망하고 난 핀란드처럼, 그나마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있던 산업이 기술적으로 추격당하고 나면 어떻게 될까?

보나마나 수학 못한다는 소리겠지. 그딴 소리 들을 필요 없고, 코테(코딩 테스트)만 통과하면 된다

기업 인재 채용 시스템은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런데 회사 최상위층이 승인한 채용 공고에 나타난 기업이 뽑고 싶은 인재는

이런데, 기업 최상위권이 똑똑해도 실행하는 말단 인사팀 수준이 낮고, 실제로 뽑을 수 있는 인재 풀이 ‘코테만 통과하면 된다’는 시장에서 어떻게 글로벌 도전이 가능한 기업을 만들 수 있을까?

요즘 국내OTT가 글로벌 OTT플랫폼들한테 밀려서 힘들다는 기사들을 보면서 어떤 생각들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난 그 국내 대기업 오너들이 답답한 인재들 때문에 속이 부글부글 끓는 모습이 너무 상상된다. ‘코테만 통과하면 된다’는 인재들 뽑아서 어떻게 회사 키울래?

위의 2개 웹사이트 링크는 현재 회사 내 테스트 서버에서 돌아가고 있는 SIAI 홈페이지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위의 주소는 내보낸 개발팀이 남겨놓은 웹사이트, 아래는 내가 약 2주 전에 반 나절 남짓 시간을 내서 손을 본 웹사이트다. 두 페이지의 로딩 속도, SSL 상황, 백엔드 서버 상황 등등 모든 측면이 달라진 것을 사용자들이 본인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텐데, 저 웹사이트의 로딩 속도 문제를 회사 개발팀 전체가 2년 동안 못 고쳤었다. 테스트 서버를 새로 만들면서 Nginx 셋팅에 손을 봤으니 그나마 로딩이라도 되는 상황이 됐다는 걸 생각해보면…

잠깐 시간이 나길래 하나하나 디버깅을 했는데, 정말 다시는 한국에서 개발자 뽑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또 한번 했었다. 개발자 아닌 내가 반 나절에 해결하는 문제를 개발자들이 2년 동안 해결 못 했다? 실력 없는 개발자 뽑아놓고 왜 그렇게 불평하냐, 누워서 침뱉기 아니냐고 할텐데, 자기 연봉이 적다는 불만을 몇 년동안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생각해보면, 최소한 자기 주변 개발자들 대비 자신의 역량이 뛰어나다는 확신이 어느 정도는 있었던 개발자들 아닐까?

‘코테만 통과하면 된다’는 인재들 뽑으면 회사가 어떻게 돌아갈지 대략 짐작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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