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지는 좋았지만 방법이 틀렸다, 명동 마비시킨 ‘광역버스 헬게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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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역버스로 꽉 찬 명동 정류장, '노선별 줄서기 표지판'의 악몽
퇴근길 버스 '무한 대기'에 지친 시민들, "탁상행정이다" 분노 
실효성 없는 정책은 무용지물, 2004년 '대중교통체제 개편' 본받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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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서울시장이 ‘명동 버스 헬게이트(Hell gate, 지옥 문이 열린 듯 끔찍한 상황)’ 사태에 대한 실수를 인정했다. 명동 광역버스 정류장 인도에 설치된 ‘버스 노선별 줄서기 표지판’이 오히려 퇴근길 혼란을 가중했다는 사실을 시인한 것이다. 오 시장은 지난 6일 자신의 공식 유튜브 채널인 ‘오세훈 TV’를 통해 “좀 더 신중하게 일을 했어야 했는데 추운 겨울에 새로운 시도를 해 많은 분들께 대기 시간이 길어지는 불편을 드렸다”며 고개를 숙였다.

명동 메운 버스와 시민들, 한파 속 ‘무한 대기’

서울시에 따르면 명동입구 광역버스 정류장의 일일 탑승객은 9,500여 명에 달한다. 그간 시민들은 바닥에 그려진 12개 노선 대기줄을 따라 29개에 달하는 광역버스 노선을 이용해 왔다. 서울시는 해당 정류장의 교통 체증 및 시민 혼란을 줄이겠다는 목적으로 지난달 27일 명동 광역버스 정류장 인도에 ‘버스노선별 줄서기 표지판’을 설치했다.

하지만 줄서기 표지판은 오히려 역효과를 냈다. 약 35m의 협소한 정류소 공간에 많은 버스와 승객이 밀집한 가운데, 앞 버스가 빠지지 않으면 밀리는 ‘열차 현상’이 발생하면서다. 표지판 설치 이후 도로 정체는 오히려 극심해졌고, 버스 이용 승객들의 대기 시간은 기존보다 2~3배 길어졌다. 광역버스들은 서울역에서 명동입구까지 꼬리를 물고 늘어서 제 자리를 찾아가기 위해 대기했다.

곳곳에서 소위 ‘퇴근길 헬게이트’가 열렸다는 불만이 쏟아지자, 서울시는 줄서기 표지판 운영을 이달 31일까지 유예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더해 현장 혼란을 줄이기 위해 경기도 수원시와 용인시 방면 등 5개 노선의 정차 위치를 조정하고, 명동입구 정류소로 진입하는 광역버스 가운데 5개 내외 노선을 을지로나 종로 방면에서 즉시 회차하거나 명동에서 무정차하도록 조치하기로 했다. 승객의 안전한 승하차를 지원하는 계도 요원도 투입된다.

모의실험 한번 없었던 ‘탁상행정’ 비판

추위에 떨며 장시간 버스를 기다리던 시민들은 줄서기 표지판이 ‘탁상행정’이라는 불만을 쏟아냈다. 제도 도입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그 ‘방식’이 잘못됐다는 지적이다. 서울시는 당초 운수회사에서 정류소 바닥에 12개 노선에 대한 노선번호를 임의로 표시한 탓에 △노선 번호 확인 어려움 △버스 승차 승객 간 충돌 우려 △정차 위치 벗어남 등 안전상 문제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결국 언젠간 해결해야 하는 문제였던 셈이다.

문제는 서울시가 지나치게 현실성이 부족한 해결 방안을 내놨다는 점이다. 서울시는 모의실험 등을 거치지 않은 채로 ‘줄서기 표지판’을 실제 도로에 배치했고, 그 결과 수많은 버스와 시민이 정차 표지판을 찾아 1시간 이상을 허비하게 됐다. 실제 서울시 관계자는 “국토교통부 업무편람의 버스 대기·탑승 시간 기준을 반영해 줄서기 표지판을 설치했다”면서도 “이 정도로 혼잡이 심해질 것은 예상하지 못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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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혼잡한 명동 버스정류장을 찾은 오세훈 서울시장/사진=유튜브 오세훈TV

일각에서는 서울시의 안일한 초기 대처가 시민의 불만에 불을 붙였다는 지적도 나온다. 제도 도입 이후 현장에 혼란이 일자, 서울시는 이달 4일 “근본적 정체 원인은 서울 도심에 지나치게 많은 광역버스 노선이 진입하고 있는 것”이라는 해명을 내놓은 바 있다. 줄서기 표지판이 혼란의 원인이 아니라는 일종의 변명으로 풀이된다. 문제가 된 줄서기 표지판에 대한 조치 여부 역시 지난 6일까지 밝히지 않았다.

‘인정받는 정책’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번 명동 헬게이트 사태를 접한 전문가들은 2004년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대중교통체제 개편’ 사례를 연상하고 있다. 이명박 시장은 많은 이들의 반대에도 불구, 서울의 대중교통체계 전면 개편을 단행한 바 있다. 당시 추진된 개편안은 △버스의 간지선(幹支線)제(터미널에서 각 지역까지는 대형 버스로, 각 지역에서 마을 단위까지는 소형 버스로 운행하는 교통체계) △중앙차선제 △지하철 환승을 위한 교통카드 시스템 등이었다.

급작스러운 대중교통체제 개편은 엄청난 혼란을 야기했다. 대중교통체계 개편을 시행한 첫날부터 교통카드와 관련한 오류가 빗발쳤으며, 시민들은 갑자기 바뀐 버스 번호와 노선으로 인해 엄청난 혼란을 겪었다. 시민과 언론은 ‘대중고통’이라는 멸칭을 활용해 해당 정책을 비판했다. 시민들은 이명박 시장을 상대로 집단 소송을 제기하는가 하면, 국민소환 운동이나 퇴진 운동을 벌이며 불만을 드러냈다.

하지만 현시점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대중교통체제 개편은 그의 ‘최대 성과’라는 평을 받고 있다. 세계대중교통협회(UITP)에서 우수정책 인정을 받기도 했다. 쏟아지는 비판을 적시에 수용하고, 세부적인 적용 상황에 귀를 기울이며 제도를 손질해 나간 결과다. 결국 정책 성공의 핵심은 취지가 아닌 집행 방식에 있다. 명동의 줄서기 표지판이 탁상행정의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실효성 있는 시행 방식을 다시 한번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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