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안뽑] ㉜실력으로 개발자 서열 만드는 CTO가 필요한 이유

pabii research
실력에 따른 주제 파악 못하고 자신의 역량을 매우 높게 착각하는 개발자들 너무 많아
시장 매커니즘이 정상 작동 안 하면서 솎아내는 시스템도 붕괴
국내 IT업계 시장이 축소되면서 도태되는 경우 점점 늘어날 것

개발자들을 열심히 뽑던 시절, 비속어를 좀 빌려쓰면, ‘깝치는’ 개발자들을 보는 일이 매우 잦았다.

굳이 CTO 레벨의 면접까지 갈 것 없이, 초급 면접 질문으로, 게시판 글이랑 댓글이랑 DB구조를 어떻게 하면 DB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을까부터, 사업 운영 방식이 바뀌는 상황에 맞게 최적 옵션이 달라지는 질문들을 연달아 던지면 아예 대답도 못하는 상태였는데, 정작 자기는 ‘배X’ 면접을 보고 있는 실력파 개발자라며 나한테 대놓고 욕을 하는 경우도 겪어봤고, 51×49=2499를 대답 못 하길래 가르쳐 주고 난 다음에도 501×499=249999로 응용을 못 하길래 면접을 중단했던 한 개발자는 Fxxxbook 각종 댓글에 면접 때 3자리 숫자 곱셈 질문하는 악마라는 식으로 왜곡된 정보를 달아놨더라.

본인의 실력 부족을 반성할 생각없이, 그저 우리 회사 욕하는 걸로 똘똘 뭉쳐있는 그 집단을 보면서, 처음에는 저 개발자들만 그렇지 다른 개발자들은 열심히 사는 분들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개발자들이 정말 어마어마하게 많더라.

난 이런 사건들이 잘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어떤 업계건 자기 능력이 모자라면 능력자들 앞에서 눈치를 보고, 시장에서 ‘짓 눌리는’ 사건들을 겪으면서 겸손해지는 것이 상식이다. 난 남들이 다들 부러워하는 IBD를 들어갔다고 어깨에 힘이 들어간게 아니라 내가 역량이 부족한 인력이라는 걸 매일 느끼면서 살았고, 같은 사정은 석·박 유학을 거치면서 바뀐 적이 없다. 내 동료들은 내가 나 자신을 표현하는데 ‘병X력’이라는 표현을 내 입에 달고 살았던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개발자-안-뽑음_202312
개발자-안-뽑음_202312

왜 개발자들은 ‘주제를 모르고 깝칠까’?

내가 귀국해서 처음 개발자 커뮤니티의 ‘주제를 모르고 깝침’을 겪었던 것은, Andrew Ng이 Coursera에 올려놓은 Machine Learning 강의를 듣고는 자기들이 Data Scientist라고 주장하는 모습을 봤을 때였다. 통계학과 학부 2학년 애들이 배우는 회귀분석 수준의 강의를 듣고, 그것도 제대로 이해를 못해서 Singular Vector Decomposition 같은 내용으로 추가 질문을 1~2개만 해도 벙찐 표정을 지으면서, 내가 하는건 Data Science가 아니라 자기네들이 하는 코드 복붙이 Data Science라고 끝까지 고집을 피우는 인력들이 얼마나 많았었나?

이런 인력들은 아직도 강남 일대에 퍼진 IT학원들에서 계속 재생산 되고 있고, 기업들을 가봐도 완전히 사라지질 않았다. 그간 봐온 한국사회의 발전 속도를 봤을 때, 최소한 5년은 더 흘러야 어지간한 1군 기업들에서 그런 가짜 Data Scientist가 완전히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 사건들을 겪으면서, 식견이 낮아도 보통 낮은 상태가 아닌, 심각하게 낮은 상태다보니 주제 파악이 아예 안 되는 그룹이라는 것을 알게 됐는데, Data Scientist라고 까불면 큰 코 다치는 것을 뻔히 알면서 뽑힌 우리회사 개발자들도 회사 내부에서 자기가 매우 잘난 인력이어서 엄청나게 연봉을 많이 받아야 된다고 큰 소리를 뻥뻥 치는 것을 보며, 이게 비단 AI/Data Science 분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개발자 집단 전체가 겪고 있는 문제라는 것을 더더욱 뼈저리게 느꼈다.

또 다른 개발자 집단으로 자기네들은 리모트로 일하는 거랑 사무실에 출근하는 거랑 효율성의 차이가 안 나기 때문에 리모트가 아니면 회사를 다닐 생각이 없다는 경우도 많이 봤었는데, 사무실에 나와 있으면 당장 말 한 마디하면 끝나고, 디자인 팀이랑 화면 같이 보면서 몇 마디 하면 끝날만한 일을 Slack에 채팅을 몇 줄이나 치고, 제대로 설명이 안 되니까 Zoom call을 수시로 켜야 되는데, 그런 물리적, 시간적 비용을 다 지불하면서도 정작 업무 효율이 동일하다고 우기는 그 집단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여기는 너네 이딴 식으로 행동하면 다 짤린다는 지적을 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나?

맘에 안 들면 실력으로 짓 누르시던가, 아니면 내보내야죠

한번은 고졸로 산업기능요원을 IT개발 쪽으로 마친 분을 뽑은 적이 있다. 본인 실력에 대해서 자부심이 엄청나고, 나한테 자꾸 몇 달 공부하면 Data Scientist될 수 있는거 아니냐고 하길래 대학 학부 이상 수학 실력 없으면 마음 비우라고 딱 자르고, 시스템 만들어서 다른 알고리즘 붙이는거만 할 수 있다고 선을 그었던 직원이다. 당시에 SIAI를 운영하고 있었으면 시험 문제 하나만 봐도 굳이 네가 할 수 있는 일 아니라고 입 아프게 설명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그 분이 너무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넘쳐나니까 다른 개발자들이 다들 힘들어 했는데, 하루는 개발팀장님을 따로 불러서

  • 다들 불만이 많은 것 같은데, 실력은 있는 친구인 것 같으니까, 계속 데리고 가려면 팀장님께서 실력으로 짓 누르시던가, 그게 안 되면 결국 내보내야겠네요

라고 운을 띄웠다.

  • 제가 왜….?

라며 자기는 그렇게 손에 흙 묻히기 싫다고 퇴근해버리시던데, 결국은 그 직원더러 회사 그만두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우리 회사만의 문제였으면 나도 할 말이 없지만, 주변에서 비슷한 종류의 이야기를 매우 자주 듣는다.

  • 개발자 애들이 진짜 버릇없고, 회사 돌아가는거에 맞춰주질 않는다
  • CTO들도 제어를 못 하더라, 어차피 내일이면 다른 회사 출근할자리 널렸는데 누구 눈치를 보겠냐

같은 표현들이 그런 이야기에 나온다.

참교육‘을 해 줄 CTO, 팀장, 아니면 시장이 있어야 정상화된다

이제 회사 내부 시스템은 개발자 없이 내 손으로 직접 만들고, 필요한 부분들은 해외 개발자들이 만든 테마, 플러그인, 기타 플랫폼들을 쓰기로 결정을 내린 내 입장에서야 굳이 한국인 개발자들에 대해서 이런 시리즈 글을 써야 할 필요도 없는 상황이 됐다. 누가 날 더러 개발자들을 좀 ‘참교육’ 시켜달라고 하면

  • 제가 왜….?

라고 나올 것이다. 굳이 내 손에 흙을 묻히고 싶지 않다. 이미 다시는 고개를 뒤로 돌리지 않을 생각이고, 뭘 해봐야 나한테 아무런 이득도 없다. 어차피 우리 회사에 뽑을 애들 없잖아? 한국 기업들한테 ‘기술 상품’을 팔 생각도 없는데? 왜 한국 개발자들을 설득해야하지?

그런데,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게 아니라, 한국 땅의 90% 이상의 기업 오너들이 한국인 개발자를 뽑는 대신 해외 개발자들에게 외주를 주겠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될까?

그 개발팀장님 본인은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었겠지만, 그 분처럼 ‘참교육’을 피하는 윗사람이 많아질수록 이 시장은 점점 더 제어 불가능한 인력들로 가득차게 될 것이다. 제어 불가능한 인력들을 써서 가성비라도 뽑혀 나오면 울며 겨자먹기로 개발자들을 뽑겠지만, 이미 IT업계로 흘러들어가던 정부 지원금, 벤처 투자금이 급감한 상태다. 몇 년 더 지나고 나면 지금보다 훨씬 더 줄어들 것이다. 무엇보다 별 대단치 않은 라이브러리 복붙에 엄청난 월급을 줬었다는걸 많은 기업들이 깨닫고 있는 중이다. 정부 관계자들만 만나면 했던 이야기들이기도 하다. 너네가 바보처럼 국민 세금을 길바닥에 버리는 바람에 시장만 왜곡되어 있다고.

결국 문제의 원인은

  • 윗 사람들이 책임을 지지 않았고
  • 윗 사람들이 실력이 없었고
  • 윗 사람들이 40대면 치킨 튀기러 나가야 했고
  • 반대로 시장에 투자금이 너무 많이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윗 세대가 사업 상황에 맞게 새로운 지식을 빠르게 습득하고 부하 직원을 통솔할 수 있는 학습 속도, 지적 역량을 안 갖추고 있는데, 인사 관리를 할 수 있는 역량도 부족하고, 시장은 시장대로 정부가 대규모 펀드를 만들어주면서 시장 활성화가 됐던 덕분에, 회사 내에서도, 회사 밖에서도 개발자들의 ‘방종’을 제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굳이 나처럼 해외로 눈을 돌리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 실력으로 아랫 사람들을 ‘참교육’하는 문화
  • 정부의 합리적인 시장 투자

같은 사건들이 작동하기만 했어도 충분히 제어가 가능했었을텐데, 늦었지만 앞으로라도 시장이 효율적으로 돌아가면 좋겠다.

나는 급하게 찍어내려고 하는 서비스들을 다 찍어내는 시점부터 우리 회사에서 이미 만든 웹사이트 템플릿을 ‘Copy&Paste’ 해 주는 서비스를 해볼까 한다. 굳이 개발자들 여럿을 뽑아서 1년씩 걸려가며 서비스 만들고, 그 개발자들에게 계속 ‘을’의 자세로 있어야 할 필요가 없는데, 이걸 내가 목소리만 높인다고 해결 될 문제가 아니라 그런 서비스가 나오고, 시장이 실제로 이쪽으로 움직여야 문제가 해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워드프레스 전체 구조를 잘 알고, 영어 실력을 탄탄하게 갖추고 있는 인력 1명만 있으면 최소한 50개 기업 세일즈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심지어 언어 능력마저도 번역기가 돌아가고 있는 The IP Markets (한 -> 영), OTT랭킹(한 -> 20개국어) 웹사이트들을 보면서 불필요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는 중이다.

지난 2010년대 초반만해도 조선소와 건설 현장을 청년들이 보이콧 한다고 기업들이 우려가 많았다. 한국 제조업계가 망한다는 이야기도 많이 나왔었다. 근데, 몇 년간 한국 청년들의 ‘추노’로 고통을 겪던 그 기업들은 이제 후진국 노동력을 더 저렴하게 데려와서 현장을 굴린다. 지난 정권이 최저임금만 엄청 올리지 않았더라도, 최소한 국적별로 차별을 뒀었더라도, 조선·건설업계가 지금보다 훨씬 더 수익성이 좋았을 것이다.

IT업계 정상화는 얼마나 오래 걸릴까?

Similar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