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꽁꽁 얼어붙은 업황에 ‘韓 해운업 살리기’ 3조5,000억원 추가 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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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부 '해운산업 경영안정 및 활력제고 방안' 발표
2030년 '세계 탑4 친환경 해운국가' 도약 목표 제시
친환경 선반 118척 늘리고 HMM 매각도 다시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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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중 반짝 호황을 누렸던 해운업계가 지난해부터 이어진 극심한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정부는 해운사들이 저시황기를 극복하고 친환경 선대로의 전환을 가속화할 수 있도록 국내 해운산업의 체질 개선에 3조5,000억원(약 22억 달러)을 투입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글로벌 톱4 친환경 해운국가 도약’을 목표로 오는 2030년까지 친환경 선박의 규모를 118척으로 대폭 늘리고 국적 컨테이너 해운사의 선복량도 6년 내 200만 TEU(1TEU는 6m 길이의 컨테이너 1개)로 확대할 계획이다.

국내 해운사 선복량 2배 늘리고 톤세제 연장 등 추진

15일 해양수산부는 비상경제장관회의를 열어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해운산업 경영안정 및 활력제고 방안’을 발표했다. 이번 방안에는 해운사별 맞춤형 위기대응 체계를 구축해 국적 선사의 경영 악화를 사전에 방지하고, 친환경 규제와 환경‧사회‧투명경영(ESG) 경영 확산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민간 자본의 친환경 선박 투자를 활성화하는 계획이 담겼다.

특히 현재 120만 TEU 수준인 국내 컨테이너 해운사들의 선복량을 오는 2030년까지 200만 TEU로 늘리는 것이 핵심이다. 국내 해운사들의 해상수송력도 9300만 톤에서 2030년 1억4,000만 톤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지난 2022년 11월 발표한 3조원 규모의 경영 안전판에 3조5,000억원을 추가로 투자하기로 했다.

구체적으로는 위기에 취약한 중소형 해운사의 선박 도입 등 특별지원 프로그램에 2,500억원, 신조지원 프로그램 확대에 2조300억원, 친환경 벙커링 인프라 구축펀드 1조1,000억원, 친환경 선박 전환 보조금 1,000억원 등에 추가 자금을 투입할 계획이다. 재원은 정부 예산이 1,000억원가량 투입되며 대부분은 KDB산업은행(산은)과 해양진흥공사(해진공) 등 정책금융기관의 여유자금을 활용한 펀드 조성을 통해 확보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국제해사기구(IMO)의 탄소집약도(CII) 규제 등 갈수록 엄격해지는 친환경 규제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로 국내 해운사의 5,000톤 이상 친환경선박을 현재 18척에서 2030년 118척으로 늘리기로 했다. 이를 위해 해운사들의 친환경 선박 발주에 총 5조5,000억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또한 주요 해운사의 완전 탈탄소화 조기 달성을 지원하고 2021년 20.2%이던 민간투자 비중을 2030년 30%까지 늘리기로 했다.

아울러 선박 확보 초기 부담을 완화하고 저시황기 경영 안정을 돕기 위해 톤세제 연장도 추진한다. 톤세제는 해운업체의 법인세를 계산할 때 영업이익 대신 선박의 톤수와 운항일수를 바탕으로 추정한 이익을 적용하는 제도로 일반 법인세보다 세금 부담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 선박 공급을 지원하는 공공선주사업은 자동차운반선 등으로 선종을 다변화하고 전문회사 설립도 검토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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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2024년 SCFI 현황/출처=Shanghai Shipping Exchange(상하이해운거래소)

코로나 팬데믹 시기 반짝 호황 누렸던 해운업황 부진

정부가 3조5,000억원의 추가 투입을 결정한 배경에는 해운업계의 극심한 부진이 영향을 미쳤다. 해상운송 항로 운임수준을 나타내는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를 보면 2021년 3,972에 이어 2022년 5,000 수준까지 올랐다가 지난해 말 1,006까지 떨어졌다. 올해 상황도 녹록치 않다. 지난 2년간 대량 발주됐던 컨테이너선 물량들이 본격 투입될 경우, 선박 물량 증가폭이 물동량 증가폭을 넘어서기 때문에 당분간 운임지수 상승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글로벌 해운업계는 코로나 팬데믹 등으로 수요가 집중됐던 2021년부터 2022년까지 반짝 호황을 누렸지만 지난해부터 업황 사이클이 꺾이면서 실적 악화를 피하지 못했다. 실제 지난해 HMM을 제외한 글로벌 대형 선사들은 대거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해운업계에 따르면 올해 3월까지 2023년 4분기 실적을 발표한 10위권 해운사 중 2위 덴마크 머스크(Maersk), 3위 프랑스 CMA-CGM, 5위 독일 하팍로이드, 6위 일본 ONE, 9위 대만 양밍, 10위 이스라엘 짐라인이 영업 적자를 냈다. 실적을 공시하지 않는 1위 스위스 MSC와 4위 중국 코스코를 제외하면 8개 해운사 중 6개사가 마이너스 실적을 올린 셈이다.

최근에는 운임 하락, 홍해 사태로 인한 물류 불안 등으로 불확실성마저 확대되고 있다. 여기에 IMO의 CII 규제, EU 탄소배출권 거래제 등 친환경 규제가 강화되면서 친환경 선박 건조 등 경영 비용이 늘어날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특히 국내 해운산업은 HMM 등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중소형 해운사로 이뤄져 위기에 더욱 취약하다는 지적이다. 국적 선사는 그간 축적한 현금성 자산으로 어느 정도 위기 대응이 가능하지만 저시황이 장기화되면 중소형 컨테이너 해운사부터 경영난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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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7일 빈센트 클럭(Vincent Clerc) 머스크 CEO와 롤프 하벤 얀센(Rolf Habben Jansen) 하팍로이드 CEO가 새로운 제미나이 해운동맹의 출범을 발표하고 있다 / 사진=머스크 YouTube

해운동맹의 재편도 해운업계의 불확실성을 야기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지금까지 ‘3강 체제’였던 국제 해운동맹은 올 들어 완전히 새로운 판이 짜여지고 있다. 지난 1월, 머스크와 하팍로이드는 ‘제미나이 협력’이라는 새로운 해운동맹을 결성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해운동맹은 특정 항로를 움직이는 해운사가 모여 항로를 공유하고, 운임 등 영업조건을 합의하는 협력체로, 제미나이의 점유율은 21.7%에 이른다. 반면 제미나이 출범 후 국내 최대 해운사인 HMM이 속한 디얼라이언스 동맹은 점유율 11.4%의 중소 동맹으로 전락하게 된다.

HMM도 실적 부진에 발목 잡혀, 매각에 시간 걸릴 듯

글로벌 해운업계의 불확실성 확대, 부진한 업황과 해운사의 실적 부진은 HMM 인수전에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 2월 산은·해진공과 인수 우선협상대상자인 하림·JKL 컨소시엄간 협상이 무산되면서 결국 HMM 매각 작업은 원점으로 돌아갔다.

HMM은 해운업계의 불황이 장기화됐던 지난 2015년 1분기부터 21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하다 팬데믹 중 해운 호황에 힘입어 2022년 영업이익 9조9,455억원, 영업이익률 53.5%의 최대 실적을 기록한 바 있다. 하지만 인수 협상을 앞둔 지난해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94% 감소한 5,849억원을 기록하면서 악재를 맞았다. 매출은 55% 줄어든 8조4,010억원, 당기순이익은 90% 감소한 1조63억원으로 집계됐다.

이에 대해 HMM은 코로나19 이후 공급 정상화와 수요 둔화로 미주, 유럽 등 전 노선에서 운임 하락이 지속되면서 실적 감소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올해 실적에 대해서도 “중국의 경기회복 지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분쟁, 수에즈운하의 통항 제한 등 불확실한 대외변수로 인해 전망은 밝지 않다”며 “최근 2∼3년간 발주된 신조선의 인도로 공급이 큰 폭으로 늘어 운임 상승을 기대하기도 힘들다”고 전했다. HMM의 실적 악화를 초래한 해운산업의 침체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채권단인 산은과 해진공이 매각 절차를 재개하기까지는 다소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현재 HMM은 하림의 매각 불발로 채권단 관리 체제로 돌아간 상태다. 산은과 해진공은 HMM 지분 57.9%를 그대로 갖고 있으며 올해와 내년 콜옵션 행사 시점이 도래하는 1조6,800억원 규모의 영구채도 보유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산은과 해진공은 “향후 기관 간 협의를 통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다양한 방안을 검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정부도 이날 발표한 해운산업 활력 제고방안을 통해 HHM 매각을 다시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HMM의 부진한 실적과 해운업의 불투명한 업황으로 인해 적잖은 난항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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