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외국계 IB들의 ‘공매도 놀이터’, 대규모 무차입 공매도 추가 적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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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글로벌 IB 14개사 불법 공매도 중간 발표
글로벌 IB 9곳 총 2,112억원 불법 공매도 적발
국내엔 엄격·해외엔 관대한 금융당국, 기울어진 운동장 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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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공매도 관련 글로벌 IB(투자은행)을 전수 조사 중인 금융감독원이 BNP파리바, 홍콩HSBC에 이어 7개사를 추가로 적발했다. 이로써 불법 공매도 혐의가 포착된 글로벌 IB는 전수 조사 대상 14개사 중 9개사, 위반금액은 2,000억원이 넘는다. 지난 2018년 골드만삭스의 불법 공매도 행위가 적발된 이후 관련 규제가 강화됐지만, 여전히 비슷한 행태가 반복되면서 금융당국의 관리 부실에 대한 쓴소리가 나온다.

글로벌 IB 9개사 2,112억원 규모 ‘불법 공매도’ 적발

6일 금감원은 국내 공매도 거래 상위 14개 글로벌 IB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총 9개사가 164개 종목에서 2,112억원 규모로 불법 공매도를 한 혐의를 적발했다고 밝혔다. 2021년 5월 공매도 부분 재개 이후 위반 가능성이 큰 종목과 기간을 집중적으로 조사한 결과다.

금감원은 이들이 무차입 공매도 거래를 한 것으로 봤다. 공매도는 주식을 빌려 판 뒤 주가가 내려가면 이를 되사 시세차익을 얻는 투자 방식인데, 주식을 빌리지 않고 매도하는 무차입 공매도는 그 자체로 불법이다. 단순 실수라도 모두 불법 행위에 해당한다. 이번 조사 결과에 의하면 이들 14개사의 공매도 거래량은 외국인 전체 공매도 거래량의 90% 이상을 차지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실상 한국에서 활동하는 글로벌 IB 중 불법 공매도 논란에서 자유로운 곳은 없는 셈이다.

최초 적발 사례는 BNP파리바 홍콩법인과 홍콩 HSBC의 불법 공매도였다. 지난해 10월 금감원은 이들이 110개 종목에서 556억원 규모로 불법 공매도를 저질렀다고 밝혔다. 지난해 11월부터 다음 달까지 공매도 전면 금지가 시행된 배경이다. 금융 당국은 지난해 12월 BNP파리바와 HSBC에 과징금 265억원을 부과하고 검찰에 고발했다. 불법 공매도에 단일 규모로 100억원 이상 과징금이 부과된 것은 처음이었다.

총 과징금 규모 1,000억원 넘길 수도

앞서 올해 초 불법 공매도 혐의가 포착된 유럽계 글로벌 IB 크레디트스위스와 일본 노무라증권은 이번 전수조사에서도 적발됐다. 지난 1월 금감원은 크레디트스위스와 노무라증권의 540억원 규모 불법 공매도를 적발한 바 있는데, 이번에 628억원 규모의 공매도 위반을 추가로 확인한 것이다. 두 증권사는 총 34개 종목에 대해 불법 공매도를 친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금융감독원은 크레디트스위스의 불법 공매도 거래에 500억원대 과징금을 부과할 전망이다. 금감원은 크레딧스위스에 불법 공매도 혐의로 총 540억원 규모 과징금을 부과한다고 사전 통지한 바 있다. 이는 2022년 한 해 동안 불법 공매도 28건에 매긴 과징금(23억5,000만원)의 20배를 상회하는 규모다.

크레디트스위스에 대한 과징금 규모가 금감원의 양정 수준에서 확정될 경우 당국이 불법 공매도 과징금제도를 도입한 2021년 이후 역대 최대 규모가 될 전망이다. 국내 주식 총 101개 종목을 약 400억원 규모로 무차입 공매도했다가 적발된 BNP파리바가 작년 12월 과징금 총 190억원을 부과받은 게 기존 최고 액수다. 상대적으로 위반금액 규모가 적은 노무라에는 40억원 규모의 과징금을 추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금감원은 나머지 5개사에 대해서도 조사를 진행 중으로, 결과에 따라 적발 규모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함용일 금감원 부원장은 “검찰 고발 여부는 현재로선 예단할 수 없다”며 “개별 사안에 따라 고의성 등을 따져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조사가 마무리되면 총 과징금 규모가 1,000억원대에 달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불법 공매도 과징금은 고의성을 비롯해 위반금액 규모, 위반을 통한 이득 규모, 주문 체결율 등에 따라 규모가 달라진다”며 “위반금액의 최대 100%까지도 과징금을 물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단, 과징금 등의 제재 수위는 금감원 자본시장조사심의위원회와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확정되는 사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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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유럽과 달리 처벌 수준 미미, 기울어진 운동장 만든 금융당국

한국이 글로벌 IB들의 공매도 놀이터가 된 데는 금융당국의 솜방망이 처벌 탓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에 당국은 국제 표준에 준하는 수준의 규제를 이어가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국내 금융기관들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 것과는 달리 글로벌 IB에 대한 처벌은 미미해 기울어진 운동장을 조성하고 있다는 비판에도 직면한 상태다.

실제 금감원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8년 상반기까지 24건의 무차입 공매도가 적발됐는데 2018년에는 골드만삭스 직원 개인이 국내외 기관이나 감독자의 승인 없이도 마음대로 주식 차입 여부를 결정, 이를 이용해 이틀간 주식 차입 없이 156종목, 401억원어치에 대한 매도 주문을 낸 바 있다. 당시 당국은 불법 공매도 위반 사건 기준 최대인 약 75억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골드만삭스 사태를 계기로 2021년 공매도 관련 처벌 규정이 강화됐지만, 강화 이후에도 △2021년 16건 △2022년 32건 △2023년(1~8월) 45건 등 적발 건수가 줄어들기는커녕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처럼 당국의 관리 부족에 따른 글로벌 IB의 내부 시스템 미비로 수년째 불법 공매도가 자행되고 있음에도, 당국은 오히려 한국 공매도 법규에 대한 이해 부족 등으로 인한 ‘단순 과실’이라며 불법 행위를 감싸는 모양새다. 이번 전수조사에 대해서도 함용일 금감원 부원장은 “소위 미공개 정보라든가 불공정 거래와 직접적으로 연계된 불법 공매도가 아닌 잔고 관리 시스템의 잘못된 설계, 실무적인 실수로 인한 무차입 공매도가 대부분”이라며 “우리 법령상 요구하고 있는 수준과 제도가 시스템에 반영돼 있지 않다면, 원치 않던 위반의 결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금감원은 이런 시스템 미비가 발견된 IB에 대해 개선을 요구한 상태지만, 강제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공매도 주문 프로세스와 잔고관리 방식 개선 등을 권고하는 데 그쳤다. 고의든 미필적 행위든 글로벌 IB의 불법 공매도가 대량 적발됐음에도 솜방망이 처벌이 계속되면서 글로벌 IB가 당국의 규제를 무시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그도 그럴 것이 당국은 앞서 비슷한 이유로 적발된 불법 공매도에 대해서도 고의보다 과실에 무게를 두고 시스템 개선을 요구하는 수준에서 사건을 마무리한 바 있다. 미국이나 유럽이 무차입 공매도에 대해 징역형 등 강도 높은 징계를 내리는 것과는 상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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