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열심히 금을 모으는 이유는 기축통화 목적이 아닌, ‘자산 다변화’

미국채 금리 급등하는데 금값도↑ 원인은 중국의 매서운 금 매수세 금 매수는 자산 다변화의 목적일 뿐 위안화가 달러 제치고 기축통화 될 가능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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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bii research
사진=pexels

중국의 금 매수세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이로 인해 최근 미국채 금리는 급등하는데도 불구, 금값은 움직이지 않는 형국이다. 과거 통계적으로 보면 미국 국채 금리와 미 달러 가치가 오르면 금값이 떨어지고, 반대로 금리 및 달러 가치가 하락하면 금값이 올라갔다. 미국 국채 금리가 오를 경우 이자를 주지 않는 금의 투자 매력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중국이 금 매수가 곧 자국 내 미국 달러 의존도를 줄이고, 나아가 달러의 기축 통화 지위를 위협하기 위한 물 밑 작업이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된다. 다만 최근 중국 대내외적 여건을 살펴보면, 중국의 금 매입은 달러 패권에 대한 도전이 아닌, 자산 다변화를 위한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 견해다.

미국채 금리-금값 커플링의 원인은?

최근 들어 미국 국채 금리가 오르는데도 금값은 요지부동한 모습이다. 실제 지난 21일 기준 미국 10년 만기 물가연동국채(TIPS) 금리는 연 2.112%로 거래를 마감하며 2009년 이후 최고치를 달성했다. 반면 최근 금 현물 가격은 트로이온스(31.1그램)당 1,920달러(261만원) 수준이다. 22일 뉴욕상품거래소(NYMEX)에 따르면 금 선물 12월물은 트로이온스당 1,945.6달러로 장을 마감했다. 금 선물 가격은 올해 들어 6% 이상 상승한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중국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다. 중국의 경기 침체 장기화가 기정 사실화되면서, 자국민들이 안전 자산으로 꼽히는 ‘금’을 구매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다는 설명이다. 실제 중국황금협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중국인들의 금 구입량은 559.4톤으로 작년 동기 대비 16.4% 늘었다. 이중 금 장신구가 368.3톤으로 전년 동기 대비 14.8% 늘었고, 골드바와 금화는 146.3톤으로 30.1% 증가한 모양새다. 여기에 중국 내부에서 금을 사고자 하는 수요는 계속 늘면서 금 가격은 오름세를 유지하는 중이다. 26일 오후 기준 상하이 금 거래소의 1g당 당 금 선물 가격은 456.1위안(약 8만4,207원)으로 올해 연초 411위안(약 7만5,879원)보다 약 10.9% 올랐다.

중국 인민은행이 금을 대량으로 매집하고 있는 것도 미국채 금리 및 금값 커플링의 원인으로 꼽힌다. 달러 의존도를 낮추고 자산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기 위해 금을 대거 매수하며 시세를 떠받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중국은 지난해 12월부터 8개월 연속 금을 사들이고 있는데, 특히 8월 기준 인민은행의 금 보유량은 93만 트로이온스(약 29톤) 늘며 총보유량은 2,165톤이 됐다.

페트로 달러 체제 → 페트로 위안 체제?

일각에선 이같은 중국의 금 매수 움직임이 결국 자국 위안화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나아가 미국의 기축통화 지위를 뺏어오기 위한 물 밑 작업의 일환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중국은 금 매수 이외에도 현재 러시아, 인도,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브릭스(BRICs) 회원국을 중심으로 위안화 결제 시스템을 확대하는 움직임을 펼치고 있다. 실제로 브릭스 국가들이 설립한 신개발은행(NDB)은 그간 회원국들을 대상으로 중국 위안화 대출을 일부 시행하고 있다.

여기에 2015년 당시 중국은 미국 달러 중심의 무역 결제망인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를 대체하겠다는 의지로 ‘국경간 결제 매커니즘(CIPS)’을 출범시키기도 했다. 해당 시스템을 통해 글로벌 경제에 위안화 거래 및 청산을 밀어 넣겠다는 게 당시 중국의 의도였다. 또 2016년 10월부터 국제통화기금(IMF)은 특별인출권(SDR) 통화바스켓에 위안화를 편입시켰다. SDR은 IMF가입국의 국제수지가 악화할 경우 필요한 규모의 외화를 빼갈 수 있는 권리통화다. 즉 IMF가 위안화를 공식 국제 통화로 인정한 것이다.

심지어 올해 3월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원유 대금 결제를 위안화로 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이로 인해 당시 일각에선 글로벌 통화체제가 ‘페트로 위안’으로 이행하는 것 아니냐는 예측이 나오기도 했다. 미국이 금본위제도를 폐지하고 나서도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건, 대규모 원유를 독점해 국제 원유 거래에 오직 달러만 사용할 수 있게 강제했던 ‘페트로 달러’ 시스템 덕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시진핑 중국 주석이 원유 결제에 대한 위안화 비중을 높임으로써 페트로 달러의 아성을 넘보고 있는 상황이라는 게 일부 전문가들의 견해다.

중국이 기축통화국이 될 수 없는 이유

그러나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중국의 기축통화 지위 달성 가능성을 매우 낮게 보고 있다. 앞서 살펴봤던 요인들로 글로벌 경제에서 위안화 거래량이 기존 대비 높아진 것은 사실이나, 상대 비중은 여전히 낮은 형국이라는 분석이다. 예컨대 SWIFT 내 달러 비중은 42.7%, 위안화는 2.3%로 미국 달러와 어깨를 견줄 수준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이뿐만 아니라 SWIFT를 대체하겠다고 만든 CIPS의 연간 거래 금액은 14조 달러(약 1경9,045조원)인 반면, SWIFT의 연간 거래금액은 무려 150조 달러(약 20경4,045조원)에 달한다. 또한 지난해 말 기준 글로벌 외환보유고에서 미국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은 58.4%로, 고작 2.7%를 기록하는 중국이 근시일 안에 기축통화 지위를 넘보긴 어려울 것으로 분석된다. IMF SDR 내 비중도 마찬가지로, 미국은 43.4%인 반면 위안화는 11.6%에 불과하다. 무엇보다도 글로벌 외환 시장 거래에서 달러 비중은 90%에 육박한다. 글로벌 금융 시스템에서 위안화가 비집고 들어갈 자리는 거의 없다는 의미다.

또한 페트로 위안의 경우 사우디와 위안화로 원유 거래를 하겠단 의지를 나타낸 시진핑 주석과는 대조적으로, 사우디 쪽에선 관련 논의가 전혀 나오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 지난해 말 중국-사우디 정상회의에서의 18개 공동성명에서 원유 결제에 대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에 전문가들은 중국이 자본자유화가 완벽히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위안화가 달러처럼 손쉽게 국경을 넘나들 수 없는 데다, 중국 당국이 입맛대로 경제 통계를 발표하지 않는 등 국가적 신뢰도도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즉 사우디에선 유동성이 떨어지는 데다 향후 거시 경제가 불투명한 중국 화폐를 선뜻 결제 대금으로 받긴 어려울 것이라는 설명이다.

게다가 특정 국가의 화폐가 기축통화가 되려면, 글로벌 국가들의 수요에 맞춰 통화를 찍어낼 수 있어야 하고, 거래가 쉬워야 하며, 거래량이 많아야 한다. 문제는 이렇게 해당 화폐를 대량으로 공급하기 위해서는 기축통화국이 지속적으로 경상 수지 적자를 버텨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어떤 통화가 기축통화가 되면 글로벌 경제에서 해당 통화에 대한 수요가 항상 커지면서 고평가되게 된다. 이에 따라 기축통화국 입장에선 똑같은 물건을 팔더라도 여타 국가 대비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 수출 악화에도 영향을 미친다. 만약 경상 수지의 악화를 견디지 못하고 통화 공급을 줄여버리면, 세계 경제는 유동성 축소에 따른 혼란을 빚게 되므로 기축통화의 지위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 이를 ‘트리핀의 딜레마(Triffin’s Dilemma)’라고 한다.

기축통화국인 미국은 오랜 기간 동안 트리핀의 딜레마를 온몸으로 받아왔다. 장기간 지속된 무역 적자로 인해 미국 내 수출 기반 산업인 노동집약 산업 및 제조업의 경쟁력은 전면적으로 파괴됐다. 일례로 미국의 오대호(Great Lakes) 인근 제조업 최대 공업 지대 지역이었던 러스트 벨트는 20세기까지만 하더라도 헨리 포드식 대량생산으로 대표되는 ‘미국 공업의 심장부’로 인식됐으나, 트리핀의 딜레마로 제조업 펀더멘탈이 갉아 먹힌 탓에, 그리고 미국의 노동자들이 동시대 활황을 맞았던 중국과 동유럽 시장으로 빠져나갔던 탓에 현재는 ‘유령 도시’로 변모하게 됐다.

이렇듯 미국의 경우 비록 트리핀의 딜레마로 인해 제조업이 파괴되는 뼈아픈 경험을 했으나, 그럼에도 반대급부로 금융업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거둬들였다. 특히 미국은 국제 무역에서 원유를 비롯해 여러 물건을 달러로 구매해야 하는 제3국에 달러 차관을 제공하고, 막대한 이자를 받았다. 여기에 달러가 기축통화가 되면서 글로벌 자본이 미국으로 흘러 들어갔고, 해당 자본력을 바탕으로 미국은 우주항공, AI 분야 등 자본 집약적인 첨단분야를 선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다만 중국이 기존 기축통화국인 미국을 따라서 자국 경제 성장의 중심축이었던 제조업을 포기하면서까지 기축통화국의 지위를 노리긴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즉 기축통화국 지위를 획득해 잃게 될 제조업, 중공업, 수출 기반 산업에 비해 금융 부문에서 미국과 같은 이득을 취하긴 어려울 것이라는 얘기다. 중앙집권화된 환경에서 경제가 발전한 중국은 미국에 비해 금융 부문이 발전할 여력이 낮았기 때문이다.

중국의 금 매입은 미-중 전쟁의 컨텍스트 하에서 자산 다변화의 목적

다시 말해 중국 중앙은행이 금을 매입해 온 건, 최소한 달러 패권에 대한 도전하는 의도가 기저에 깔려있는 것은 아니라는 분석이다. 사실 금을 늘리는 나라는 비단 중국만이 아니다. 세계금협회(WGC)에 따르면 전 세계 중앙은행들은 지난해 한 해 동안 금 1,135.7톤을 매입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2021년 매입규모(450.1톤)의 두 배를 넘어선 수준으로 관련 통계를 집계한 1950년 이후 역대 최대 매입량에 해당한다. 글로벌 중앙은행들이 금 매입을 늘리고 있는 것은 미 연준의 금리 인상, 러-우 전쟁의 장기화,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 등 대내외적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안전자산인 금을 선호하고 있는 것이라는 게 학계의 중론이다.

다만 중국 인민은행의 경우 지난해 4분기에만 62톤을 매입해 금 보유량이 총 2050.3톤으로 늘어나는 등 여타 글로벌 중앙은행 대비 더 빠르게 금을 매입하고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기축통화 지위를 거머쥐기 위한 움직임이라기보다는, 미-중 패권 전쟁 속에서 미국이 대중 인바운드·아웃바운드 투자를 모두 틀어막는 등 달러를 무기화하자, 보유 중인 미국채 가치가 출렁일 것을 우려한 중국이 해당 보유량을 축소하고 대신 자산 다변화의 명목으로 금 보유량을 늘림으로써 전체 자산 가치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중국은 2000년부터 미국채 매입량을 늘렸다가, 2014년을 기점으로 차츰 축소세에 들어갔다. 지난해 4월에는 당시 상징적인 지표인 1조 달러(약 1,361조원) 아래까지 떨어뜨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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