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입국항 난민신청제도, 한국의 인권 수준은 어디까지인가?

공항 내 난민신청자, 간이 심사도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경우 많아 서류 부실 등의 정황이 자국 내 탈출이 긴급했었음을 시사 우리 정부는 국민 안전 등의 이유로 융통성 없이 대응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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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터미널’은 동유럽의 작은 나라 ‘크로코지아’ 출신의 한 남자가 뉴욕으로 날아오는 동안 본국에 쿠데타가 일어나 일시적으로 ‘유령 국가’가 된 탓에 미국 입국 심사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는 것을 보여준다. 순식간에 무국적자로 전락한 주인공은 고국에 돌아갈 수도, 뉴욕에 들어갈 수도 없는 상태에서 공항의 열악한 시설을 기반으로 생활을 유지하며 시간을 보내게 된다.

해당 사례의 경우 일반적으로는 난민으로 신청서를 내고 난민 심사 절차를 밟는 것이 통례다. 한국도 지난 2013년 7월부터 출입국항에서 난민 신청을 할 수 있도록 법규를 신설했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러시아 동원령을 피해 요트로 한국행을 택했던 러시아인 20여 명에 대한 입국을 불허하면서 난민신청제도가 유명무실한 제도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난민신청절차/출처=국회입법조사처

출입국항 난민신청제도, 국경 보호와 난민 인권 보호 사이의 경계선

‘출입국항 난민신청제도’는 공항 등 출입국항에서 외국인이 난민신청을 한 경우 출입국항에 일정 시간 머물며 난민인정심사에 회부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제도로, 난민심사의 전 단계로 볼 수 있다. 동원령을 피해 한국에 왔던 러시아인들의 경우는 난민인정심사 자체가 진행되지 않은 것이다.

인천공항에 따르면 지난 2013년 이후 약 10년간, 신청자 총 2,066명 중 난민인정심사에 회부된 경우는 44.9%에 불과하다. 난민인정사유에 포함되지 않거나 거짓 서류를 제출하는 경우, 거짓 진술로 일관하는 경우가 불회부사유였다.

인권위원회에서는 강제송환금지원칙에 따라 난민신청을 한 시점부터 난민의 전 단계로 인정해 본국으로 송환시켜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난민법상에 이들에 대한 법적 지위가 규정되지 않은 탓에 강제송환의 위험성뿐만 아니라 공정한 심사를 위한 절차적 권리 및 이의신청 권한 등이 지켜지지 않는 점도 지적됐다.

법무부는 국민의 안전을 보호한다는 목적에서 난민으로 인정되지 않은 타국인에게 인권 보장을 해 줄 수는 없다는 방침이다. 이에 대해 유엔난민기구는 ‘명백하게 이유 없거나 남용적 신청’에 한해, 정식심사를 거치지 않고 간이심사를 통해 재량으로 신청을 배제하는 것을 인정할 수는 있으나 난민협약국으로 가입한 만큼, 간이심사 재량을 제한할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난민인정심사 불회부사유/출처=국회입법조사처

불복절차 수행 중인 난민신청자의 공항 내 인권 문제

간이심사가 낳는 또 하나의 문제점으로, 단순 심사의 불합리를 주장하며 불복절차를 밟게 되는 일부 난민들의 공항 내 생활 환경 문제가 지적된다. 공항은 장기 거주를 위해 설계된 공간이 아닌 탓에 출국대기실에서 장기간 거주해야 하는데, 열악한 처우 및 시설 과밀화가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영화 ‘터미널’에서 주인공 ‘나보스키’는 노숙자 생활에 적응하며 시청자들에게 불편한 웃음을 선사하기도 했으나, 현실적으로 난민들의 생활상은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서는 수준이다. 지난해 강제송환이 결정됐던 러시아인 20여 명의 경우 입국 불허 결정 이후에도 울릉항에 11일 동안 발이 묶인 상태에서 해경에게 사흘 치 식량, 물 100리터, 연료유 100리터밖에 받지 못했다. 울릉항 도착 4일째인 10월 5일에 다시 출발했다 기상 악화로 울릉도로 다시 회항했으나, 해경은 무단 상륙에 대비해 경비를 강화하기도 했다.

당시 정부 당국은 러시아인들은 관광 목적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사실상 동원령을 피해 러시아를 탈출한 것으로 보이는 만큼, 입국을 불허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법무부 출입국 담당 관계자는 “최근 국제 정세가 급변하고 있어 국경관리 당국으로선 입국 목적이 확실한 사람 위주로 입국 허가를 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과 함께 자칫 국가 수준의 분쟁으로 격화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출입국항 난민신청 및 심사 회부 현황(2013년 – 2022년)/출처=국회입법조사처

출입국항 난민신청제도의 중・장기적 과제

법무부는 ‘패스트트랙’으로 출입국항 난민신청절차를 간소화, 효율화하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난민법 제정안에서 논의됐던 4주간의 공항 내 난민심사절차의 취지를 되살려 일종의 패스트트랙으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까다로운 입국허가를 전제하지 않고도 난민신청절차를 밟을 수 있도록 관리 시설을 운영하겠다는 설명이다.

현재 송환대기실에 배정된 난민심사 불복 인원들은 ‘난민신청자 또는 심사 중인 외국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법무부가 책임지지 않는다. 이들에 대한 관리 책임은 이들을 태우고 온 항공사들 자체 모임인 항공사운영위원회(AOC)가 부담한다. 송환대기실에는 매 끼니마다 햄버거와 콜라를 제공하지만, 항상 같은 음식만 먹어야 하는 이들의 어려움이 큰 만큼, 패스트트랙 신설로 불복절차에 따른 불편함을 일부 피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인권위원회의 주의사항 중 하나는 체류자격을 불문하고 입국만 한다면 난민신청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공항에서 일괄 거절되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난민신청자들 중 상당수가 여권 등의 기본적인 서류가 없는 경우들이거나 위·변조된 경우가 많은 만큼, 이같은 정황이 정상적인 본국 탈출이 어려운 상황이었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본국 내 재산을 처분하지 못하고 박해를 피해 급히 탈출했을 가능성이 크며, 입국 후에도 기본적인 의식주의 위협에 놓일 개연성이 높은 만큼, 난민신청자들의 사정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심사 대기 절차가 진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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