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서는 기금 모아 방산물품 공동구매 한다는데, 우리나라는 ‘여전히 소극적’

러-우 전쟁에 따른 안보 위협에 무기 공동구매 나선 유럽 폴란드서 요구한 30조원 규모 국내 방산품, 수출금융 한도에 걸려 불발 글로벌 시장서 인정받기 시작한 K-방산, ‘금융지원 문제’가 가로막아선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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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월 24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특별 군사작전 개시를 명령하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됐다. 유럽 근교에서 벌어진 전쟁에 유럽 각국은 자국 내 방위산업을 강화하고, 국방예산을 늘리는 등 물리적 안보 강화에 나섰다.

EU 집행위원회와 유럽방위청(EDA)은 지난해 5월 ‘방위 투자 격차에 관한 공동입법문서’를 채택하고, 같은 해 7월 ‘유럽방위산업강화공동조달규정(안)(EDIRPA)’에 합의했다. 사상 처음으로 EU 예산을 투입해 무기 공동구매를 추진한 것이다. 이어 올해 7월에는 EU 역내 탄약 생산력과 조달 효율성을 높이는 ‘탄약생산지원규정(ASAP)’도 최종 입법했다.

국회도서관은 29일 이같은 내용을 담은 ‘유럽연합(EU)의 방위산업강화 관련 입법례’ 보고서를 발간하고, 국내 방위산업청이 유럽방위기술산업기반 강화를 위한 EU의 재정 지원과 기금 조성 법제화 등의 사례에 조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폴란드 등에서 관심을 보이는 K-방산의 수출 확대 및 국내 방위산업 전반 강화를 위해 국내 방산정책이 변화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독일의 주력 전차 레오파르트2 A6/사진=게티이미지뱅크

유럽방위산업 강화를 위한 EDIRPA

지난해 EU 집행위와 EDA가 합의한 EDIRPA는 EU 회원국이 필요한 방산물자를 공동조달 방식으로 제공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EU 측 설명에 따르면 EDIRPA의 목표는 ▲유럽방위기술산업기반의 경쟁력 강화 ▲공공 지출의 효율성 증대 ▲방산물자 공급망 개방에 대한 회원국 간 협력 가속화 ▲방위체계 표준화 ▲회원국 방위역량 간 상호운용성 강화에 있다. 즉 우크라이나를 신속히 지원하는 동시에 각국의 방산품 재고를 비축하는 것이 핵심이다.

EDIRPA 규정에 따라 EU는 3억 유로(약 4,300억원)의 기금을 EU 예산으로 조성해 유럽방위산업 강화를 위한 방산물자 공동조달을 위한 재정으로 활용해야 한다. 이때 각 공동조달에 대한 EU의 재정지원은 전체 기금의 15%를 초과할 수 없지만 우크라이나 또는 몰도바가 공동조달 행위로 추가 수량을 공급받는 경우, 공동조달 계약 추정가액의 최소 15%가 중소기업 또는 중견기업에 할당되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20%까지 지원할 수 있다.

또 원칙적으로 EU 방산물자 공동조달 참여는 EU 27개 회원국이나 노르웨이·리히텐슈타인·아이슬란드 등 유럽 30개국 방산업체만 가능하다. EU 회원국 또는 협력국 내에 법인을 설립한 제3국의 경우 해당 국가(제3국)가 보증하면 공동조달에 참여할 수 있지만 제3국산 방산 부품의 비율은 35% 미만까지만 인정된다.

EU 역내 방산업체 직접 지원하는 ASAP

ASAP는 EU 역내에서 탄약과 미사일 등 방산물자 생산역량을 강화하고 회원국 및 우크라이나에 방산물자를 적시 지원하기 위한 임시적 감시 규제체계다. 이는 EU 이사회가 올해 3월 승인한 ‘탄약에 대한 3단계 합의안(△EU 회원국 재고에서 우크라이나로의 탄약 긴급 지원 △재고 보충을 위한 라운드 탄약 100만 개 공동조달 △유럽방위산업 생산역량 증대)’에 기반한 규정으로, 유럽 방위기술 산업 전반의 효율성과 경쟁력을 촉진하는 데 목적이 있다.

규정에 따라 EU와 유럽평화기금(EPF)은 5억 유로(약 7,400억원)의 기금을 예산으로 조성해 2025년 6월 30일까지 ASAP을 한시적으로 운영한다. EU 집행위는 해당 예산을 방산물자·부품과 이를 제조하기 위한 원자재 생산역량에 이익이 되는 활동에만 지원해야 하며, 기금 신청 검토 시 방위산업 강화 기여도를 바탕으로 제안서를 평가해 차등 지원해야 한다.

(왼쪽부터)세바스찬 흐바웩 폴란드 국영방산업체 PGZ그룹 회장, 손재일 한화디펜스 사장, 엄동환 방위사업청장, 마리우스 브와쉬착 폴란드 국방부 장관, 이용배 현대로템 사장, 유동준 국방부 전력자원관리실장이 2022년 8월 26일(현지 시각) 폴란드 모롱크시에 있는 기계화부대에서 열린 체결식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사진=방위사업청

K-방산,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하는데

한편 우리나라는 현재 세계 7개 권역별 15개국을 대상으로 무기를 수출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방산 수출은 170억 달러(약 22조5,121억원)에 달하는 사상 최대 규모를 달성해 성장 가능성을 보였다. 올해에도 국내 방산업체들은 폴란드에 약 90억 달러(약 11조3,000억원) 규모의 K2 전차 180대, K9 자주포 100문 이상, 천무 다연장로켓 수십 문을 수출할 예정이다.

다만 지난 6월 폴란드 정부가 30조원이 넘는 우리 방산품을 추가 도입하겠다고 발표한 것과 달리 실제 수출 규모는 상당히 축소된 모양새다. 폴란드 정부에서 2차 계약 조건으로 우리나라에 20조원 이상의 추가 금융 지원을 요구한 탓에 수출에 제한이 걸렸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정부의 연간 수출금융 지원 한도는 방산 포함 중공업 분야 전체에서 100억 달러(약 126,000억원)로 한정돼 있다.

이와 관련해 국회도서관은 EU의 EDIRPA와 ASAP의 사례를 참고해 국내 방산 금융지원을 강화할 혁신펀드 조성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 방산업체가 유럽에서 방산 부품 수출 거점 국가를 확대하고, 새로운 수출 주력 제품을 발굴해 무역 확대로 이어가도록 입법적·정책적 지원을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 방산업계 전문가도 “폴란드는 무기 구매 큰 손이자, 유럽 방산 시장 진출의 교두보”라며 “금융지원 문제가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기 시작한 K-방산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고 역설했다. 국내 방산품 수출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정부차원에서 금융지원 한도 증액, 예외 적용 등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둘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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