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 유치 전쟁 참패 둘러싼 온도차, “졌잘싸” vs “준비 부족”

pabii research
엑스포 유치 역전 노리던 韓, 사우디에 '압살' 당했다
유치 실패에도 '낙관론' 나오지만, "애초 준비가 부족했다"
'빨간불' 켜진 부산, 현안 정책 추진에도 '제동' 
윤석열-엑스포
윤석열 대통령이 24일(현지 시각) 파리 한 호텔에서 열린 국제박람회기구(BIE) 대표 초청 오찬에서 오찬사를 하고 있다/사진=대통령실 공식 페이스북 캡처

우리나라가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에 실패했다. 이에 각계에서 “오일머니를 넘어서긴 힘들었다”,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 “엑스포 유치엔 실패했지만 대한민국의 저력을 보여줌으로써 또 다른 가능성을 얻을 수 있게 됐다” 등 반응이 나왔다. 그러나 국민들 사이에선 비판적 의견이 쏟아진다. 최종 프레젠테이션 영상 퀄리티 논란 등 준비 부족 및 성의 부족 문제가 거듭 드러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위상을 어떻게 알렸다는 건지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2030 부산 엑스포, 결국 사우디에 밀렸다

세계박람회기구(BIE)는 28일(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173차 총회에서 2030년 엑스포 개최지로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를 선정했다. 부산은 165개국이 투표한 1차 투표에서 119표를 얻은 사우디에 이어 29표를 얻는 데 그쳤다. 리야드는 1차 투표에서 3분의 2 이상의 득표를 얻어 개최지로 선정됐다. 당초 부산은 1차 투표에서 리야드의 3분의 2 득표를 저지하고 2차 투표에서 역전승을 노렸지만, 결국 이루지 못할 꿈으로 남고 말았다. 대통령실은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민관이 원팀으로 치열하게 노력했지만 아쉬운 결과를 맞이했다”는 짧은 입장문을 냈다.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서면브리핑을 통해 “밤늦게까지 결과를 기다리고 부산 유치를 응원해 주신 부산 시민과 국민 여러분께 위로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전했다.

경제계는 아쉬움을 드러내면서도 엑스포 유치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저력을 보여준 성과는 높이 평가했다. 기업과 경제단체들은 그동안 정부와 ‘원팀’이 돼 세계 곳곳을 발로 뛰며 부산엑스포 유치전에 총력을 기울여 왔다. 최태원 상의회장(SK그룹 회장)은 부산엑스포유치 공동위원장을 맡았고,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수시로 해외를 오가며 부산 엑스포 유치 활동에 힘을 보탰다. 정의선 현대차 회장도 엑스포 전담 태스크포스(TF)를 꾸려 그간 지원 활동에 매진했다. 또 구광모 LG그룹 회장을 비롯한 LG 주요 경영진은 엑스포 개최지가 최종 발표되는 순간까지 주요 전략 국가를 대상으로 유치 교섭 활동을 적극 이어갔고, 실질적 연고지가 부산인 롯데도 일찌감치 부산엑스포 유치 지원을 위한 TF를 구성해 그룹 차원에서 공을 들였다.

경제계는 각계각층이 보여준 목표 달성을 위한 의기투합과 노력이 국가 발전을 위한 또 다른 가능성으로 작용할 수 있단 기대감을 드러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논평에서 “기업들은 글로벌 인지도 강화, 신시장 개척, 공급망 다변화, 새로운 사업 기회 등 의미 있는 성과도 얻었다”고 밝혔다. 한국경제인협회는 “세게 다양한 국가들과의 교류 역시 향후 한국 경제의 신시장 개척에 교두보가 되고 엑스포 유치를 위한 노력과 경험은 앞으로 대한민국이 아시아의 리더를 넘어 글로벌 리딩 국가로 나아가는 데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이번 유치 활동은 경제·문화적으로 발전된 대한민국을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을 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많은 정상과의 만남을 통해 폭넓은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등 국가의 위상을 높였다”고 힘줘 말했다. 엑스포 유치 과정에서 나타난 원팀 행보가 국격을 높였다는 의견도 나왔다.

엑스포-싸이
부산 엑스포 최종 PT 영상/사진=SBS 유튜브 채널 갈무리

K-스타 앞세운 정부, “한국적 색채는 어디에?”

그러나 이 같은 낙관적인 의견에 반감을 드러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엑스포 유치 과정에서의 허술함, 각종 추태, 정치적 이익을 위한 언론 플레이 등 과오를 ‘졌잘싸’ 프레임에 가둬 흐릿하게 만들고 있단 지적이다. 가장 먼저 도마에 오른 건 최종 PT 때 상영된 공식 홍보 영상 퀄리티 문제였다. 33초 분량의 홍보 영상엔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과 지휘자 정명훈, 소프라노 조수미 등 부산 엑스포 홍보대사 및 김준수 등 K-팝 스타,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게임’을 통해 글로벌 스타로 자리매김한 배우 이정재가 등장했다. 현장 관계자들은 “PT 자체는 사우디와 비교해 결코 뒤지지 않았다”고 평가했지만,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영상 콘셉트와 편집이 촌스럽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특히 PT 영상 속 부산의 특색이나 한국이란 나라를 보여주는 요소가 불분명했고 K-팝 스타만 지나치게 앞세운 점이 비판의 대상이 됐다. 사우디가 ‘변화의 시대 : 지구를 선견지명이 있는 내일로 이끌다’라는 주제로 남녀노소가 등장, 다양성·다문화·생태 등 요소를 부각한 것과는 정반대였다. 이에 대해 한 누리꾼은 “최종 PT 보면 나 같아도 사우디를 뽑고 싶을 것”이라며 “이런 영상으로 29표나 받았으면 K-팝과 K-드라마에 절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 29표는 BTS 아니면 오징어게임 보고 한 투표일 것”이라고 정부를 직격하기도 했다.

부산 엑스포 유치전에서 사우디 리야드에 완패하면서 연일 ‘박빙승부’라고 홍보성 보도를 내놨던 언론에도 책임론이 제기됐다. 한 누리꾼은 “어느 날부턴가 정부와 언론이 엑스포 유치에 성공할 것처럼 ‘박빙’, ‘역전’, ‘접전’ 등 단어들을 꺼내 들었는데, 지금 보니 그 근거가 전혀 없었다”며 “사우디를 공식적으로 지지한 국가가 120개국이 넘는다. 정부와 언론은 도대체 어떤 ‘뒷배’를 믿었던 건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도 비판 대열에 가세했다. 이 전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부산 시민과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성과는 냉정하게 분석해야 다음에 비슷한 실패를 경험하지 않을 것”이라며 “사우디의 경제적 지원을 바탕으로 한 유치전과 그에 따른 제3세계 국가들의 외면이 있었던 것 같지만, 유치 관계자들은 너무 그런 부분을 대외적으로 강조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오일머니’의 존재감을 부각하며 ‘어쩔 수 없었다’는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이들을 직격하는 발언이다.

가덕도
가덕도 신공항 조감도/사진=국토교통부

엑스포 유치 불발, 가덕도 신공항 등 사업도 ‘불투명’

한편 부산 엑스포 유치가 불발됨에 따라 엑스포 개최와 맞물려 추진돼 온 가덕도 신공항 조기 개항 등 부산 현안 사업에도 차질이 불가피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정부는 2030년 부산 엑스포 개최를 위해 가덕도 신공항을 2029년 12월 조기 개항한다는 목표를 세운 바 있다. 그러나 엑스포 개최가 무산돼 정부가 가덕도 신공항 건설에 속도 조절을 가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애초 사전타당성 조사에서 가덕도 신공항 공사 기간이 9년 8개월로 추산된 만큼, 2035년 6월 개항이 가장 현실성 높을 것으로 보인다. 가덕도 신공항 개항 시기가 늦춰지면서 가덕도 신공항과 연계해 눌차만, 천성항 일대를 주거, 상업, 물류 시설을 갖춘 복합도시로 개발하려던 부산의 계획도 늦춰질 공산이 크다. 아울러 가덕도 신공항과 부산항 북항 등 도심을 잇는 부산형 급행철도(BuTX) 건설 사업의 미래도 불투명해졌다.

국토교통부는 엑스포를 개최하지 않더라도 가덕도 신공항 사업을 유지하겠단 계획이지만, 국토부가 가덕도 신공항 사업을 반대한 주체였던 만큼 엑스포란 동력을 잃은 지금 신공항 재검토 주장을 반박하는 데 어려움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가덕도 신공항 건설의 이유를 엑스포 유치로 들었던 부산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대구 경북 통합신공항과 맞물려 가덕도 신공항에 대한 ‘예산 낭비’ 우려가 높아질 가능성도 생겼다. 최근 기획재정부의 대규모 국세수입 결손이 발생하며 예산당국이 비상에 걸렸다는 점 또한 가덕도 신공항 사업에 빨간불을 켰다. 세수 추계에 수십조의 오차가 발생하며 긴축재정 기조가 더욱 강해질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대상인 가덕도 신공항은 그만큼 적절성 논란에서 자유롭기 힘들다. 엑스포 유치 실패로 부산이 잃은 파이는 크다. “저희는 엑스포 유치가 안 된단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며 사업 추진을 강행한 정부의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은 원죄로 돌아와 우리를 옥죈다.

Similar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