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 업체 옥죄는 알리익스프레스, e커머스 시장 ‘지각변동’ 가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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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산 제품까지 끌어들인 알리익스프레스, 고객 세대층 확대 성공했다
초저가 상품에 퀵배송까지, 국내 유통 생태계 '고사' 수순
흔들리는 韓 e커머스 시장, 중국 정부 업고 날아오른 알리익스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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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알리익스프레스

중국 최대 e커머스 기업 알리바바의 해외 서비스인 알리익스프레스가 ‘수수료 제로’ 혜택을 내세우며 한국 브랜드를 끌어들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브랜드 파워가 약한 중국산 초저가 상품뿐 아니라 한국의 유명 브랜드 상품까지 넣어 쿠팡과 네이버쇼핑이 주도하는 국내 e커머스 시장의 판을 흔들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알리바바는 도매상에 소매가의 절반 가격으로 물건을 대량 공급하는 1688닷컴의 한국 서비스까지 시작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쿠팡과 네이버스토어가 양분해 온 국내 e커머스 시장에 지각변동이 일기 시작한 셈이다.

알리, ‘제로 수수료’ 앞세워 국내 시장 진출

30일 유통 업계에 따르면 알리익스프레스는 한국 브랜드 상품을 모아놓은 K-베뉴 입점 업체를 대상으로 오는 3월 말까지 수수료를 받지 않기로 했다. 최대한 많은 한국 기업이 입점해 물건을 팔도록 수수료 수입을 포기한 것이다. K-베뉴에 입점한 한국 기업은 LG생활건강, 애경, 깨끗한나라, 유한킴벌리 등이다. 통상 제조업체들은 알리익스프레스 같은 오픈마켓의 ‘장터’를 빌려 쓰는 대가로 매출의 10~20%를 수수료로 낸다. 수수료가 없어진다는 건 제품을 팔 때 마진이 10~20% 높아진단 의미다. 납품업체들 입장에서 수수료도 안 받고 물건을 팔아주겠다는 알리의 제안을 굳이 떨쳐낼 이유가 없다.

실제 알리익스프레스의 사용자는 지난해 10월 K-베뉴가 문을 연 이후 빠르게 늘고 있다. 데이터 제공업체 와이즈앱에 따르면 작년 초 300만 명대에 불과하던 알리익스프레스의 월간 사용자는 10월 600만 명을 넘어섰고 12월에는 약 713만 명까지 급증했다. 단기간에 2위인 11번가(768만 명)에 근접한 것이다. 유통 업계는 한국 브랜드 상품으로 구색이 넓어지자 10·20대 젊은 소비자뿐 아니라 40·50대 중장년층까지 빠르게 유입된 것으로 분석한다. 당초 알리의 주력 상품이던 중국산 제품들은 초저가인 만큼 품질이 상대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배송이 오래 걸려 사용자를 폭발적으로 늘리는 데 한계가 뚜렷했으나, 한국 브랜드 상품을 본격 판매하면서 고객 세대층이 급격히 확장된 것이다.

침투력 높이는 알리, ‘퀵배송’까지 갖췄다

차후 알리바바가 1688닷컴의 한국어 서비스까지 본격화할 경우 알리의 국내 침투력은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1688닷컴은 중국 내수용 B2B(기업간거래) 서비스로, 값이 일반 소매가격의 절반 수준인 게 최대 장점이다. 초저가인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등에 비해서도 가격 경쟁력이 크다. 이미 G마켓, 11번가 등 국내 오픈마켓의 판매자 상당수가 1688닷컴에서 물건을 구매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 유통사들이 1688닷컴의 한국 진출을 두려워하는 이유다. 한 업계 관계자는 “국내 유통 생태계 자체가 알리바바에 갇힐 가능성이 있다”며 “향후 1688닷컴이 도매상뿐 아니라 소매상에도 물건을 판매하기 시작한다면 국내 유통시장 전반을 알리바바가 장악하는 일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전했다.

그간 단점으로 꼽혔던 ‘느린 배송’도 점차 상쇄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업계의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앞서 알리익스프레스는 지난해 3월 CJ대한통운과 국내 배송 독점 계약을 맺었다. 국내 물류 업계까지 알리익스프레스가 좌우하는 모양새가 된 셈이다. 알리는 머잖아 국내 온라인 쇼핑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쿠팡과 직접적인 경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배송 문제만 해결되면 국내 최대 업체로 꼽히는 쿠팡과 비교해도 큰 단점이 없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한 업계 관계자는 “e커머스 업계에서는 현재 알리에게 ‘짝퉁’만 판다는 손가락질을 하지만, 사실 알리가 판매하는 가품들은 저렴한 공산품이 대부분이어서 진품 여부가 판매 실적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면서 “알리는 극단적인 가격 경쟁력과 짧은 배송 서비스까지 갖추고 있어 국내 저가 공산품 시장에서 쿠팡을 뛰어넘을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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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서도 고전, ‘시한부’ 못 면한 토종 업체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문가들 사이에선 토종 업체들의 ‘안방’인 한국 유통 생태계가 중국 직구 플랫폼에 잠식될 수 있단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국내 업체 입장에선 중국의 저렴한 인건비와 효율적인 제조 인프라, 자본력을 이겨내기 힘들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해외도 아닌 우리 안방이 국내 업체에 불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작용하고 있단 점이다. 현재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등 중국 플랫폼 기업과 여기에 입점한 판매자는 국내 소비자 보호를 위한 한국 전자상거래법이나 표시광고법 등의 규제를 준수하지 않아도 된다. 반면 우리 기업은 다양한 국내 규제를 준수하기 위해 많은 인력을 고용하고 비용을 지출하고 있다. 국경이 존재하지 않는 디지털 경제에서 과도한 규제는 기업경쟁력과 산업 기반을 크게 약화시킬 수 있다. 유통업 규제를 강화하는 우리 정부의 규제책이 국내 업체의 숨통을 옥죄는 모양새다.

반면 중국 정부는 온라인 유통업체의 해외 진출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지난 2021년에 발표한 제14차 5개년 계획을 통해 온라인 커머스를 집중 육성하고 있다. 일대일로 정책 일환으로 e커머스 비단길을 구축해 중국 제조사의 수출을 지원하겠단 취지다. 이를 위해 중국 정부는 해외 배송 물류 인프라를 구축하고 통관 절차를 간소화했다. 수혜 대상에는 중국 온라인 유통업체뿐만 아니라 이들을 통해 상품을 판매하는 중국 제조업체도 포함된다.

중국이 초저가 상품과 퀵배송을 앞세워 온라인 유통을 잡아먹기 시작하면 국내 업체는 그 틈을 비집을 힘조차 잃게 된다. 가격 경쟁력을 따라갈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중국 업체의 진출이 본격화된 가운데 국내 유통업체는 시한부 신세가 됐다. 우리 정부가 유통에 대한 시각을 전환하지 않는다면 국내 유통 생태계는 고사를 면치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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