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포럼] 대만 총통 선거에 가려진 중대한 과제들

pabii research
라이칭더 후보가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민진당 3연임 성공
독립·친중의 대립, 미·중 대리전 양상에 국내·외 관심 집중
드라마틱한 정세 변화에 대만 내부의 중대한 현안 가려져

[동아시아포럼]은 EAST ASIA FORUM에서 전하는 동아시아 정책 동향을 담았습니다. EAST ASIA FORUM은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학교(Australia National University) 크로퍼드 공공정책대학(Crawford School of Public Policy) 산하의 공공정책과 관련된 정치, 경제, 비즈니스, 법률, 안보, 국제관계에 대한 연구·분석 플랫폼입니다. 저희 폴리시코리아(The Policy Korea)와 영어 원문 공개 조건으로 콘텐츠 제휴가 진행 중입니다.


지난해 대만에서 가장 중대한 이벤트는 총통 선거운동이었다. 대만 내부에서는 민진당의 장기 집권 여부와 국민당의 정권교체론, 커원저를 중심으로 한 신진 정치세력의 등장 등이 주요 이슈로 부상했다. 여기에 기술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대리전 양상을 띄면서 선거 결과에 세계의 관심을 쏠렸다. 하지만 이 기간 동안 드라마틱한 선거운동에 가려 중대한 이슈가 공론화되지 못한 채 가려지고 말았다.

tiwan_EAF_202402152
사진=East Asia Forum

선거기간 중 외교적 고립, 미투 파문 등 사회 이슈 발생

지난해 3월 민진당 내 유력 경쟁자들이 스캔들 등으로 인해 출마 의사를 철회하면서 라이칭더 부총통이 당내 경선에서 단독 후보로 등록했고 큰 출혈 없이 집권 여당의 총통 후보로 지명됐다. 반면 야당인 국민당은 후보 선정 과정에서 내부 분열에 직면했다. 국민당 경선에서 허우유이 신베이 시장이 승리하자 경쟁자였던 테리 궈가 탈당해 총통 선거 출마를 선언하면서다. 테리 궈는 기술기업 폭스콘의 창업자로 2019년 경선에서 패배한 후 재기를 노렸지만 또 다시 후보 지명에 실패하면서 독자 노선을 선택했다.

이 시기 온두라스는 82년 만에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정식 수교를 맺었다. 중남미 지역에서 대만의 핵심 수교국이었던 온두라스가 중국과의 수교를 통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수용하면서 대만과 수교하고 있는 동맹국은 13개국으로 줄어들었다. 독립 성향의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집권한 2016년 5월 이후 9개국이 단교를 했지만 대만 내부에서는 이 사실이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양안 관계는 지난 2016년 차이잉원 총통이 취임한 이후 중국과 대만 간의 교류가 중단되면서 더욱 악화했다. 차이잉원 총통이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추진하며 대만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했지만 이는 중국의 보복을 초래했다. 이 때문에 야당인 국민당은 민진당이 8년 가까운 집권 기간 동안 대만을 전쟁 직전까지 몰고 갔다고 주장하면서 경제적 긴장을 완화하고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중국과의 관계 회복이 중요하다고 주장해 왔다.

두 주요 정당의 총통 후보가 확정된 이후에는 ‘미투(MeToo)’ 파문이 대만 정계를 덮쳤다. 라이칭더 부총통이 민진당의 후보로 지명된 지 두 달이 지난 2023년 5월 전 민진당 당원이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당내에서 성희롱을 당한 사실과 함께 여성 인권운동가 출신의 국장에게 신고 이후 부당한 대우와 2차 피해를 당했다고 폭로한 것이다. 이후 민진당 고위직과 총통부 관계자, 차이잉원 총통을 지지하는 민간단체로까지 미투 고발이 확산됐고 평소 여성 인권을 강조해 온 민진당 지도부가 정작 본인들의 성희롱 문제는 소홀히 대처했다는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이에 결국 차이잉원 총통이 직접 사과했고 당내 관련자와 책임자들은 줄줄이 사임했다. 라이칭더 후보도 수차례 고개 숙여 사과했다. 대만은 2019년 아시아 최초로 동성 결혼을 합법화하는 등 평소 성인지 수준이 높은 국가로 평가받았지만 이번 미투 사태를 계기로 성평등과 여성 인권 문제에 대한 인식과 지원이 더 필요하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됐다.

부동산 가격 상승, 임금 정체 등 민생에 대한 불만 심화

한편 지난 1월 선거에서 민진당의 장기 집권을 막고 야권이 승리할 수 있는 가장 가장 좋은 전략은 국민당 허우유이, 민중당 커원저, 무소속 테리 궈, 세 명의 후보가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것이었지만 이 계획은 실현되지 못했다. 야권은 분열됐고 선거운동 기간동안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서 결국 대선에서 패배했다. 하지만 민진당과 국민당, 민중당, 세 당 모두 득과 실이 공존했다.

국민당은 라이칭더 후보가 승리하면서 대만 최초로 3연임을 한 정당이 됐다. 다만 라이칭더 후보의 득표율은 40.1%에 그쳤고 민진당은 입법원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정치적 불안 요소는 여전하다. 민중당의 커원저 후보는 26.5%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선전했고 민중당은 입법원 선거에서 8개의 의석을 확보하면서 향후 법안 통과에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국민당은 바라던 정권 교체를 이루지 못했지만 정치적 기반을 더욱 공고히 했다. 허우유이 후보의 득표율은 33.5%를 기록했으며 입법원 선거에서는 이전보다 14개 의석을 더 확보했다.

하지만 나름의 성과를 거둔 정당의 입장과 달리 대만 국민들의 불만은 여전하다. 지난해 반도체주가 강세를 보이며 대만 주식시장이 급등했지만 실제 기업가치 상승과 실적 개선의 혜택을 체감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만 국민의 70%가 차기 총통의 최우선 과제를 ‘경제 발전’이라고 응답했고, 특히 응답자 중 20~30대의 비중이 가장 높았다.

또한 최근 주택가격 상승, 임금 정체, 경제적 격차 등이 심화되면서 민진당에 대한 불만이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여론이 이어지면서 총통 선거 막바지에는 세 명의 후보자 모두 부동산 문제로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 민진당 라이칭더 후보는 그의 고향인 타이베이 북부 탄광 지역에 어린 시절 살던 집을 불법으로 증축했다는 비판을 받았고 국민당 허우유이 후보는 아내가 보유 중인 다수의 아파트를 임대해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는 논란에 휘말렸다. 민중당 커원저 후보도 농지를 주차장으로 불법 개조해 공동 소유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차기 총통, 미·중 사이에서 유리한 균형 찾는 지혜 필요

대만의 산업·무역정책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오랫동안 대만 기업들은 토지, 수자원, 전력, 노동력, 전문인재 등 5개 핵심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에 대해 불만을 제기해 왔다. 일례로 지난해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업체인 대만 TSMC는 정부와 협력해 대만 내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려고 했지만 고질적인 인프라 부족의 문제로 인해 결국 계획을 철회했다. 아울러 자원 빈국인 대만은 그동안 자원과 에너지, 인프라 등의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어 왔다. 지난해 3월에는 극심한 계란 부족 사태가 발생하면서 정부가 계란을 수입했지만 이 중 30% 이상이 파손이나 유통기한 만료로 폐기 처분되면서 국민들의 비판과 항의가 이어졌다.

대만은 직면한 수많은 어려움 중에서도 에너지 부족 문제는 특히 심각하다. 대만은 에너지의 98%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데, 대만에 진출한 미국 기업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70%가 가장 우려되는 문제로 ‘안정적인 전력 공급 부족’을 꼽았다. 특히 대만은 반도체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한 TSMC를 중심으로 전 세계 반도체 산업을 선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만 리스크’의 파장은 작지 않다. 대만의 에너지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 반도체 산업 전반이 마비되면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지난 20년간 에너지 수요가 증가했지만 높은 인구 밀도와 토지 사용 규제 등으로 인해 재생에너지의 비중을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대만이 적극적으로 재생에너지 개발에 힘쓰고 있지만 여전히 화력 발전의 비중이 81%에 이르는 등 화석 연료에 의존하고 있다.

이에 민진당은 오는 2025년까지 현재 전력 생산량의 8%를 차지하는 재생에너지의 비중을 20%까지 확대하고 원자력 발전의 비중을 점진적으로 줄여나가는 것을 목표로 ‘2025년 원전 제로’를 선언했다. 다만 현재의 기술력으로 ‘원전 제로’의 목표를 달성하려면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현재 대만 국민들이 전기요금 인상 등을 수용하지 않는 상황에서 원전 제로는 비현실적인 목표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대만은 앞서 언급한 문제를 해결하고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가장 유리한 균형을 찾아야 한다. 대만은 중국과는 역사적·문화적으로 관련이 깊고 미국과는 민주적 가치를 공유하는 독특한 위치에 있다.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유리한 균형을 찾음으로써 글로벌 정세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런 만큼 앞서 언급한 국내 문제들을 해결하고 이같은 국가적 잠재력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새로 취임하는 대만의 지도자와 국민들의 지혜가 필요하다.

원문의 저자는 원치 양(Wen-Chi Yang) 대만 국립청치대학교(National Chengchi University) 호주연구센터 디렉터입니다.

yang_EAF_20240215
원치 양/사진=National Chengchi University

영어 원문 기사는 Behind the scenes of Taiwan’s presidential election | East Asia Forum에 게재되었습니다.

Similar Posts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