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상원 ‘우크라 지원 예산안’ 통과, 바이든의 조용한 발빼기 시작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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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80조·이스라엘 18.7조’ 지원안, 상원 통과
다만 '공화당 다수 포진' 하원 통과 여부는 불투명
대선 앞두고 태세 전환 시동거는 바이든 행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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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상원이 우크라이나, 이스라엘, 대만 등지에 총 953억 달러(약 126조원)를 지원하는 패키지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사실상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반대에도 적지 않은 공화당 상원의원들이 예산안 처리에 찬성하면서 일단 상원 문턱을 넘었다. 다만 하원은 공화당이 다수당인 데다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을 비롯해 친트럼프 강경파들이 상당수 포진하고 있어 이번 예산안이 하원에서도 통과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대선을 앞두고 있는 조 바이든 대통령의 전쟁 출구 전략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126조원 규모 ‘우크라이나·이스라엘·대만’ 지원 패키지

13일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 따르면 미 상원은 이날 본회의를 열어 찬성 70표, 반대 29표로 안보 패키지 예산안을 가결했다. 예산안은 우크라이나에 601억 달러(약 80조원)를 지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에 대한 단일 원조로는 최대 규모다. 그중 대부분은 2025년 9월 30일까지 제공될 예정이다. 이외에 이스라엘에 141억 달러, 대만 등 인도·태평양 지역에 48억 달러, 세계 분쟁지역의 민간인에게 91억5,000만 달러를 지원하는 안도 포함됐다.

이날 통과된 수정안은 지난 7일 상원 토론 종결 표결에서 부결된 안보 패키지 예산안 가운데 여야가 첨예하게 다퉜던 국경 통제 관련 내용은 제외하고 작성됐다. 앞서 지난 7일 미국 상원은 해외 원조와 더불어 국경 통제 방안이 포함된 1,183억 달러(약 157조원) 규모 안보 패키지 법안을 찬반 투표에 부쳤지만, 투표 결과 찬성 49표, 반대 50표로 필요했던 ‘찬성 60표’를 크게 밑돌며 법안이 좌초됐다. 양당이 합심해 지난 4일 내놓은 합의안이었으나, 7일 투표에선 공화당 상원의원 49명 중 45명이 반대표를 던졌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국경 통제 법안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그간 트럼프 전 대통령도 지금껏 이민자를 배척하는 주장을 펴 왔지만, 11월 대선을 앞두고 국경 통제가 바이든 대통령의 성과가 되는 상황을 경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12일 상원은 의안에 대한 합법적 의사진행방해(필리버스터)를 무력화하기 위한 절차 표결을 찬성 66표, 반대 33표로 가결했고 새벽까지 토론을 이어간 끝에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국경 통제 관련 내용은 빼고 해외 지원안만 다시 올려 상원 통과를 이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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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억 달러 투입했지만 사실상 패배, 하원 문턱 넘기 어려워

다만 이번 예산안은 공화당이 우세한 하원의 문턱을 넘지 못할 공산이 크다. 공화당 소속인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이 미국 국경 정책 관련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예산안에 대한 반대를 시사했기 때문이다. AP통신은 “하원에서는 많은 공화당 의원들이 (해외) 지원을 반대하고 있다”고 지적했고, 미국 뉴욕타임스도 “이 법안은 하원에서 공화당의 저항으로 무산될 위기에 처해 있다”고 전했다. 공화당 유력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역시 법안 통과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10일 자신의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우리는 더 이상 되돌려받을 수 있다는 기대나 아무 조건 없이 돈을 줘서는 안 된다. 미국은 더 이상 바보가 돼선 안 된다”고 추가 안보 예산안 처리를 강력히 반대했다.

실제로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지원 규모는 자그마치 1,000억 달러(약 134조원)에 달한다. 미 의회에 따르면 미국은 2022년 1월부터 2023년 8월까지 무기와 군 장비 등에 240억 달러를 제공하는 등 군사 지원 부문이 466억 달러(약 62조원)에 달하며, 경제적 지원에 285억 달러, 인도주의 지원에 132억 달러 등을 제공했다. 이는 역대 미국의 주요 대외 지원을 뛰어넘는 규모다. 미 싱크탱크 외교협회가 집계한 자료를 살펴보면 지난해 7월 기준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지원은 국내총생산(GDP)의 0.33% 규모로 1970년 이스라엘(0.18%), 1964년 중남미(0.15%), 1962년 파키스탄(0.08%) 지원 규모를 훨씬 웃돈다.

문제는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전달한 무기 중 절반 이상이 어디에 있는지 행방이 묘연한 상황이란 점이다. 지난달 11일 미 국방부 감찰관에 의하면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17억 달러(약 2조2,346억원) 규모의 무기와 군사 장비 중 56%에 달하는 10억 달러(약 1조3,141억원)어치의 무기 행방을 찾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재블린 대전차 미사일과 야간투시 장비, 공대공미사일인 암람미사일 등 약 4만 개 규모다. 국방부는 현재 우크라이나에 주재하면서 지원금을 범죄적으로 유용한 혐의 등을 조사하고 있으며 무기 밀매의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추가적인 군사 원조가 필수적이라는 바이든 행정부의 주장은 공화당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공화당 소속 랜드 폴 켄터키주 상원의원은 “우크라이나에는 미국의 국가 안보적 이익이 걸려있지 않다”며 “그리고 설령 이익이 달려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돈이 없다”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여론도 악화하는 추세다. 지난해 12월 파이낸셜타임스(FT)와 미 미시간대 로스경영대학원이 미국인 유권자 1천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온라인 여론조사에 따르면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 군사·재정 지원을 “너무 많이 하고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전체의 48%에 달했다. 반면 “적당한 금액을 지출하고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전체의 27%, “충분히 지출하고 있지 않다”고 답한 응답자는 11%에 그쳤다.

‘전쟁 출구 전략’ 모색하는 바이든

이렇다 보니 일각에서는 올해 대선을 앞두고 바이든 정부가 전쟁 출구 전략으로 예산안 통과를 이끈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미-러 간접전으로 번진 전쟁에서 지난 3년간 사실상 어떤 유의미한 승리도 거두지 못한 만큼, 당초 예산안 부결을 예측하고 절차 표결을 강행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외신에 따르면 바이든 행정부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이 올해 대선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영토 비율(약 18%)은 줄어들기는커녕 되려 늘어났으며, 미국의 간접 참전 목표인 ‘러시아 군대 무력화’ 역시 실패로 돌아갔다. 러시아가 점령한 동부·남부 영토를 되찾으려는 우크라이나를 대대적으로 지원했지만 작전이 잇달아 실패하자 기존 전략에 대한 의구심도 커졌다.

바이든 행정부가 전쟁에서 발을 빼려는 움직임을 보인 것은 지난해 말경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백악관을 방문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전쟁이 거의 2년에 다다랐지만 우크라이나가 강하고 자유롭다는 것은 이미 엄청난 승리”라고 말했는데,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부분적 승리’를 선언하고 전쟁의 출구를 찾기 위한 포석이라 해석했다. 다만 지금까지 백악관이나 미국 국방부가 공식적으로 전략 변화를 시사한 적은 없다. 이에 대해 한 외교 소식통은 “평화협상에 대한 논의는 있었지만 바이든 정부로선 정치적 리스크 때문에 공식적으로 물러서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당초 미국은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러시아를 물리치고 승리한다는 목표를 내걸었지만,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피로감이 커진 데다 지난해 6월 큰 기대를 모았던 우크라이나군의 반격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기류에 변화가 생겼다. 장기화된 전쟁 피로감으로 인해 바이든의 지지율마저 급락하자 미 정부는 러-우 전쟁에 대한 방침을 ‘방어 강화’ 기조로 바꾸는 등 출구전략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휴전을 바라는 쪽은 미국뿐만이 아니다. 뉴욕타임스(NYT)의 지난해 12월 보도에 따르면 공개 석상에서는 호전적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와 휴전할 용의가 있다는 신호를 조용히 보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크렘린궁(러시아 대통령실)이 휴전 가능성을 타진해 온 것은 지난해 9월부터로, 복수의 외교 채널을 통해 승리 선언이 가능하고 현재 점령지가 유지되기만 한다면 협상에 관심이 있다는 메시지를 발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아직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영토를 넘겨주는 것을 전제로 한 휴전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미국과 러시아 양국 모두 협상 카드를 꺼내는 데 신중할 수밖에 없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다만 장기화하는 전선 교착에 서방의 지원이 급감하자 우크라이나도 한계에 다다른 모습이다. 격전 중인 동부 전선 요충지인 마린카를 끝내 러시아에 내주고 퇴각한 것이 이를 방증한다. 뿐만 아니라 러시아에 비해 병력과 탄약을 조달하는 데도 애를 먹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의 이번 예산안까지 공화당의 벽에 가로막힌 만큼 무리해서 전쟁을 끌고 가다가는 동부 돈바스(도네츠크·루한스크) 전체를 잃을 수 있다는 우려도 흘러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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