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력 떨어졌다” 밸류업 열풍 사실상 소멸, 총선 후 추진 방향에 주목해야

pabii research
증시 한바탕 휩쓴 밸류업 프로그램, 증시 부양 동력 잃었다
저PBR주 줄줄이 조정, 이어지는 주주환원 정책 소용 없었나
총선 앞두고 불확실성 커져, 업계는 "구체적 가이드라인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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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증권업계의 3월 정기 주주총회 일정이 마무리된 가운데, 일부 상장사들이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에 발맞춰 주주환원 정책을 강화하고 나섰다. 이번 주주총회를 통해 자사주 소각에 나선 곳은 미래에셋증권·NH투자증권·키움증권·이베스트투자증권 등이다. 밸류업 열풍이 한 차례 증시를 휩쓴 가운데, 업계 일각에서는 5월 발표 예정인 정부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가이드라인을 보고 소각 여부·규모를 결정해도 늦지 않다는 분석이 흘러나온다.

자사주 소각 나선 상장사들

NH투자증권은 2011년 이후 13년 만에 기업 밸류업 차원에서 보통주 417만주를 매입·소각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약 500억원 규모로, NH투자증권의 지난해 별도 당기순이익 증가분(965억원)의 절반에 달한다. 키움증권은 약 645억원 규모의 당사 자사주 209만5,345주를 올해부터 2026년까지 3년에 걸쳐 소각하기로 했다. 미래에셋증권은 보통주 1,000만 주(822억원)의 소각을 결정했으며, 이베스트투자증권도 오는 5일 자기주식(우선주) 637억원 규모에 달하는 577만895주를 소각하겠다고 공시했다.

자사주 매입 후 소각은 배당보다 적극적인 주주환원 정책으로 꼽힌다. 시장에서 유통되는 자회사의 주식을 기업이 직접 사들일 경우 주가가 상승 동력을 얻을 뿐만 아니라, 기업의 자본 조달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단 최근에는 자사주 매입에 그치지 않고 과감한 소각까지 단행한 해낸 기업만 실제로 주주환원을 이행했다고 인정받는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자사주 소각이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의 취지에는 맞지만, 아직까지 그 효과는 애매하다는 평이 나온다. 대다수 기업이 소각 여부나 규모를 5월 발표 예정인 정부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가이드라인을 보고 결정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 각 기업은 밸류업 가이드라인의 핵심이 될 자사주 소각 장려 정책의 방향 및 그 강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밸류업 열기’ 빠진 한국 증시

가이드라인 발표 이전 수많은 기업이 선제적으로 자사주 매입·소각에 나선 가운데, 시장 일각에서는 이 같은 ‘밸류업 열풍’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최근 주요 증권사 리서치센터들은 잇따라 코스피 지수 예상치를 상향했다. 한국투자증권은 올해 코스피 예상범위를 기존 2,300~2,750에서 2,500~3,000으로 상향 조정했다. NH투자증권은 연내 코스피 지수가 기존 전망치인 2,830을 넘어 3,100에 도달할 수 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밸류업 프로그램이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를 해소할 것이라는 기대가 반영된 수치다.

문제는 다가오는 총선에 있다. 현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밸류업 프로그램, 금융투자세 폐지 등의 정책은 총선 결과에 따라 그 방향성이 바뀔 수 있다. 정부는 밸류업 프로그램의 하반기 본격 시행을 전제로 오는 5월 최종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겠다고 예고했지만, 시장의 불안감은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다. 금융주, 자동차주 등 밸류업 기대 수혜를 입었던 저PBR(주가순자산비율) 종목들은 이미 뚜렷한 조정기를 맞이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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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의 경우 지난달 4일 25만5,000원까지 치솟으며 종가 기준 52주 신고가를 기록했으나, 이후 화력을 잃으며 지난 4일 22만6,000원에 장을 마쳤다. 신고가와 비교하면 10%가량 하락한 수준이다. 기아 역시 지난달 14일 12만8,000원까지 뛰어오르며 52주 최고가를 경신했으나, 이후 상승분을 고스란히 반납하며 4일 10만6,700원에 거래를 마감했다. KB금융, 하나금융지주 역시 유사한 양상을 보였다. 지난 4일 KB금융 종가는 6만9,500원, 하나금융지주는 5만8,300원으로 지난달 14일 기록한 52주 최고가 대비 각각 10% 하락했다.

밸류업 프로그램, 여전히 ‘애매모호’

시장은 밸류업 종목 주가 하락의 원인으로 차익 실현 수요로 인한 매물 증가를 지목한다. 외국인 매수세는 꾸준히 들어오고 있으나, 기관 투자자들은 지난달 말부터 본격적인 매도 기조로 돌아섰다는 것이다. 밸류업 ‘이벤트’에 대한 피로감이 누적됐다는 점도 주가 하락의 원인으로 꼽힌다. 실제 정부는 지난 2일 지배구조 우수기업에 대한 감사인 지정제 적용 면제 등 밸류업 프로그램과 관련한 추가 인센티브를 제시했지만, 관련 종목 주가는 별다른 변동이 없었다. 이에 일각에서는 밸류업 프로그램이 증시 내 화력을 점차 잃어가고 있다는 평이 흘러나오고 있다.

밸류업 열풍에도 불구, PBR 1배 미만인 기업의 수가 오히려 늘었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저평가 기업의 주가 관리 의지, 투자자 관심 등이 정부의 강력한 밸류업 추진 의지를 따라가지 못한 것이다. 4일 기준 코스피·코스닥 상장사 중 PBR 1배 미만인 상장기업은 1,112개로 확인됐다. 이는 정부가 본격적으로 기업 밸류업을 선언하고 나선 올 1월 17일(1,111개)보다 오히려 1개 증가한 수준이다. 지난해 말(1,079개)과 비교하면 33개사가 증가했다.

증권업계에서는 밸류업 프로그램의 구체적 가이드라인이 발표되기 전까지는 투자자들의 수요가 실적 우수 기업에 몰릴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현재 정부가 세수 부진으로 기업에 파격적인 세제 혜택을 제공하기 어렵다는 점, 투자자 대다수가 국내보다 해외로 쏠리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밸류업 프로그램보다는 실적을 따라 투자하는 것이 안정적이라는 평가다. 결국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이 실질적인 시장 부양 효과를 발휘하려면 상속세·배당세 개편 등 확실한 ‘혜택’이 따라와야 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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