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정부 TSMC 제2공장에 6조원 지원, ‘반도체 전쟁’ 속 한국만 느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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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반도체 강국 재건, 2030년 매출 148조원' 목표로 순항 중
기시다 총리 "지역기업 성장, 일자리 창출, 임금 향상 등 기대"
규슈, 홋카이도 등 향후 반도체 물류 거점 5곳 신설 구축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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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대만 TSMC가 제1공장이 있는 일본 구마모토현에 제2공장을 추가로 건립하기로 했다. 일본 정부는 제1공장과 제2공장에 총 1조2,000억 엔이 넘는 보조금을 지원할 계획이다. 일본이 반도체 강국의 부활을 위해 해외 기업의 유치를 위해 공격적인 지원책을 시행하는 가운데 한국은 여전히 세액공제와 행정편의 중심의 정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4.10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내놓은 공약들도 지원 규모에 있어 미국, 일본 등 주요국의 수준에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TSMC, 제1공장에 이어 제2공장도 구마모토현에 건설

7일 아사히신문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웨이저자 TSMC 최고경영자(CEO)는 전날 TSMC 일본 제1공장을 시찰한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 만난 자리에서 제1공장이 건립된 구마모토현 기쿠요마치에 제2공장을 추가로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비용 절감 등 직접효과를 위해 제2공장은 제1공장과 인접한 곳에 들어설 것으로 보이며, 2022년 4월 착공해 지난해 말 완공된 제1공장은 올해 4분기 양산을 시작할 계획이다. 제2공장은 6~7㎚(나노미터) 반도체를 생산할 예정으로, 오는 2027년 말 가동을 목표로 한다.

일본 정부는 TSMC 제2공장에 최대 7,320억 엔(약 6조5,300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제1공장 보조금과 합치면 총 1조2,080억 엔(약 10조8,000억원)에 이른다. 이날 기시다 총리는 “TSMC 공장 건립은 일본 전역에 큰 파급 효과를 미치는 프로젝트”라며 “지역기업의 성장과 임금 인상, 고용 확대 등의 기회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30년간 이어진 수축 지향에서 벗어나 성장형 경제로의 전환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TSMC 진출로 현지 임금이 상승세로 돌아서는 등 이곳에서의 성과가 전국으로 확산돼 투자 활성화로 이어지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웨이 CEO는 “제1공장이 현지에서 조달하는 원재료·부품 등의 비중이 60%에 달할 것”이라며 “제2공장이 완공되면 공장 2곳에서 고도로 숙련된 기술직 3,500명 이상을 직접 채용하는 등 양질의 일자리가 늘어갈 것”이라고 화답했다. 그러면서 “현지 기업과 공고한 관계를 구축하고 지역 인재 육성, 일자리 창출 등을 통해 지역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규슈경제조사협회에 따르면 규슈·오키나와·야마구치의 반도체 설비투자에 따른 경제효과는 2021년부터 10년간 총 20조770억 엔(약 179조266억원) 수준으로 이 중 TSMC 공장이 들어선 구마모토현은 10조5,360억 엔으로 절반에 달한다.

日 정부, 자국의 반도체 기업 라피더스에도 5조원 지원

일본은 19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전 세계 반도체 시장 점유율이 50%에 달했지만 최근에는 한국과 대만의 경쟁업체들에 밀려 현재 점유율이 10% 수준에 그치고 있다. 그럼에도 반도체는 여전히 일본 경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실제로 현재 일본 증시의 상승을 이끄는 ‘사무라인 7’ 중 스크린홀딩스, 어드반테스트, 디스코, 도쿄일렉트론 등 4곳이 반도체 기업이다. 이에 일본 정부는 반도체 강국의 위상을 되찾기 위해 해외 기업을 자국에 유치해 반도체 공급망의 문제를 해소하고 일본의 반도체 생태계를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수립해 공격적인 지원 정책을 전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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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MC 구마모토 공장이 해당 정책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두 공장에서는 고성능컴퓨팅(HPC), 산업·소비자용 칩, 차량용 반도체 등 산업 전반에 필요한 제품을 생산한다. 제2공장 설립 후 일본 내 TSMC의 총 생산능력은 12인치 웨이퍼 기준 월 10만 장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에 앞서 올해 추가경정예산으로 반도체 산업 육성 자금 1조8,537억 엔(약 16조2,000억원)을 확보했고 지난 2일에는 자국 기업 라피더스에 5,900억 엔(약 5조2,600억원)을 추가 지원하기로 했다. 라피더스는 도요타, 키옥시아, 소니, NTT, 소프트뱅크, NEC, 덴소, 미쓰비시UFJ은행 등 일본 대표 대기업 8곳이 첨단 반도체 국산화를 위해 2022년 설립한 회사다. 

TSMC 공장 추가 건립 등 반도체 산업이 부활의 조짐이 보이면서 물류망 정비도 빠르게 추진되고 있다. 닛케이에 따르면 일본의 물류기업인 ‘일본통운’은 향후 일본 내 5개 지역에 반도체 물류 거점을 개설할 방침이다. 올해 안에 가장 먼저 신설되는 지역은 TSMC와 라피더스의 공장을 짓고 있는 규슈와 홋카이도다. 내년에는 혼슈 동북부 이와테현에 구축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닛케이는 “물류 거점에서는 반도체 부자재인 웨이퍼와 공장 기계 보수에 필요한 부품 등을 보관하게 될 것”이라며 “올해 말 기준 물류거점의 면적은 28만㎡로 지난해보다 7배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주요국은 보조금 전쟁, 韓 부실한 지원책에 위기감 고조

TSMC에 앞서 지난해 10월에는 미국의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 테크놀로지가 일본 정부로부터 최대 1,920억 엔(약 1조7,000억원) 규모의 보조금을 지원받아 히로시마에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기로 했다. 마이크론 테크놀로지는 일본 공장 건설에 최대 5,000억 엔(약 4조5,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히로시마 공장에서는 첨단 반도체 양산에 필요한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일본 내에 들여와 2026년부터 차세대 D램을 생산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정부는 시설투자액의 최대 50%를 지원하는 정책 외에도 자국 내 반도체 산업 활성화를 위해 지원할 수 있는 모든 정책을 동원해 오는 2030년까지 자국한 반도체 매출을 2020년 대비 3배인 15조 엔(약 148조원)으로 끌어올린다는 전략이다.

일본이 파격적인 수준의 보조금 지원에 나서면서 한국 반도체 산업을 둘러싼 위기감도 고조되고 있다. 반도체 업계와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도 적극적인 반도체 산업 지원책을 통해 글로벌 반도체 기업의 투자를 유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현재 우리 정부의 지원책은 세액공제, 행정편의 제공에 머물러 있다. 대규모 보조금을 지원하는 미국, 일본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더욱이 현재 반도체 등 국가전략기술산업의 시설 투자에 대해 대기업은 15%, 중소기업은 25%의 세액공제를 받도록 한 K칩스법은 2024년 말 시효가 끝난다. 법인세를 감면해 주는 임시투자세액공제의 경우 여야가 손을 놓으면서 지난해 말 만료됐다.

그간 국회에서는 세수 부족과 부자 감세 등을 이유로 여야 모두 반도체 기업의 보조금 지원정책에 대해 외면했다. 하지만 4·10총선을 앞두고 여야는 다시 반도체 산업 지원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화성, 용인 등 이른바 ‘반도체 벨트’로 불리는 수도권 지역에서는 공장 설립의 발목을 잡는 규제를 완화하고 세제 지원을 늘리겠다는 공약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국민의힘은 ‘경기 남부 반도체 메가클러스터 조성 계획’을 적극 지원하고 인허가 신속처리 특례 등을 포함한 K칩스법을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수원, 용인, 이천, 화성 등 경기 동남권을 반도체 특화지역으로 지정하고 K칩스법에 따른 투자세액공제의 일몰 기간을 연장하겠다고 밝혔다.

반도체 산업 지원에 여야가 한목소리를 내는 건 분명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공약이 대부분 예산 조달 등의 구체성이 부족하고 정치적 불확실성이 강해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 게다가 선거를 앞두고 생색내듯 내놓은 정책들은 기존의 한계를 개선하지 않은 채 여전히 세액공제와 행정편의 제공에 머물러 있다. 더 큰 문제는 반도체 벨트의 유권자를 겨냥해 선심성으로 내놓은 공약마저도 경쟁국 수준에 한참 못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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