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면책특권 ② “자정 노력 부족한 우리 국회, 자율적 시비 판단과 조처 나서야”

면책특권 기원 영국, 비의회적 언어로 징계 경험한 의원 다수 민주적 기본질서 해치는 발언 면책 대상 제외한 독일 제도 남용 비판 잇따른 우리 국회, 자정 노력 병행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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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면책특권과 관련해 면책 범위의 구체화하는 것을 비롯해 국회 차원에서 자율적으로 사안의 시비를 판단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국회입법조사처는 18일 발간한 ‘국회의원의 면책특권: 국내·외 비교와 쟁점’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말하며 영국과 독일 등의 면책특권 관련 법률 조항을 예시로 들었다.

최초의 면책특권 영국, 비의회적 언어는 의회 내부에서 징계

영국은 면책특권을 전 세계에서 가장 처음 명문화한 곳이다. 영국은 14세기 국왕이었던 리처드 2세의 예산 낭비를 비판해 작위를 박탈당한 토마스 핵시(Thomas Haxey)경의 사면을 계기로 면책특권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이후 1689년 의회제정법인 「권리장전(Bill of Right)」에 “의회에서 행한 발언, 토론, 의사의 자유는 의회 외 어떠한 장소나 재판소에서도 소추 및 심문받지 않는다”고 규정했다.

잉글랜드와 웨일스 민사법원을 대표하는 직책인 항소 법원 판사(구 기록보관관, Master of the Rolls) 역시 2011년 발간한 ‘Committee on super injunctions’ 보고서를 통해 면책특권이 헌법상 가장 중요한 절대적 특권이며, 어떤 법원 명령으로도 이를 침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다만 영국의 면책 특권은 의회 밖에서 소추 및 심문받지 않을 권리이므로, 비의회적 언어는 하원의사 규칙에 따라 회의 퇴장이나 직무정지처럼 의회 내부의 징계 사유는 될 수 있다. 실제로 영국에서는 적지 않은 의원이 이를 이유로 징계를 받은 경험이 있다.

보좌직원 면책 여부까지 판례로 명시한 미국

영국 권리장전의 영향을 받은 미국 역시 연방헌법 제1조 제6항에서 “연방의원은 원내 발언 및 토론에 대해 원외 어디에서도 심문받지 않는다”고 면책특권을 규정하고 있다. 과거 미국 헌정 초기 연방 대법원은 의원의 직무 관련 행위 일체가 면책된다고 봤지만, 1972년 M. 그래블(M. Gravel) 전 연방상원의원의 국가기밀 임의 공개를 계기로 그 범위를 한정했다. 해당 사건 이후 미연방 대법원은 면책특권의 대상을 ‘의회 내 심의·표결과 이에 직접 관계된 행위’라고 판시했다. 의회 내 명예훼손적 발언에 대해서는 회의 중 발언은 면책될 수 있지만, 해당 발언을 그대로 대외 출판하는 행위 등은 면책 대상에 포함하지 않는다고 봤다.

이와 함께 미연방 대법원은 의원이 직접 행했다면 면책 대상인 행위를 보좌직원이 대신했을 때 해당 보좌직원의 행위도 면책될 수 있다고 판시하는 등 면책 대상의 범위를 구체화했다. 다만 의회 사무처 직원이나 의원 개인의 고문변호사 면책권은 부인했으며, 보좌직원의 행위일지라도 사안별로 구분해 입법 활동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경우에만 면책된다고 판시했다.

의원내각제 독일, 발언 자격 따라 면책 여부 달라져 

독일은 기본법 제46조 제1항을 통해 “의원은 의회 및 위원회에서의 표결이나 발언으로 언제나 재판상·직무상 소추되지 않고 원외에서 책임지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독일은 의원내각제 특성상 연방의원이 내각 각료를 겸하는 경우가 많은데, 독일 기본법은 의원 자격으로 의회에서 한 발언 등은 면책 대상이지만 내각 각료로서 발언한 것은 면책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엄격히 구분하고 있다.

또 ‘중상적 모욕(verleumderische Beleidigungen)’은 면책 범위에서 제외한 점도 특징이다. 이에 따라 의회나 위원회에서 특정 의원의 중상모욕적 발언은 원내 자체 징계는 물론 형법에 따른 형사 책임까지 질 수 있다. 다만 사안별로 불체포특권 적용 여부는 달라진다.

이 밖에 프랑스는 헌법에서 비교적 폭넓은 면책특권을 보장하고 있으며, 일본 역시 연설·토론·표결 외에도 원내 의견 표명으로 인정되는 행위 직무 부수 행위를 면책 범위에 포함하며 광범위한 면책특권을 보장하고 있다.

‘모욕적 발언 금지’ 등 국회의 역할도 중요

입법처는 중상적 모욕에 대해 면책권을 인정하지 않는 독일의 사례를 들며 사안별 면책 여부를 일일이 판단해야 하는 우리나라도 모욕이나 명예훼손, 민주적 기본질서를 해치는 발언을 면책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해 봐야 한다고 제언했다. 다만 헌법이 면책특권의 범위를 직접 구체적으로 제한하면 입법부의 독립성과 자주성을 훼손할 우려가 제기되는 만큼 그 효과와 한계를 종합적으로 살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또 면책특권을 제한하려는 개헌에 관한 장기적 구상과는 별개로 의회가 스스로 의원의 책임을 물어 제재하고 있는 주요국의 사례를 참고해 국회가 자율적으로 사안의 시비를 판단하고 적절한 조처를 내리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우리 국회에서 2013년부터 올해 9월 5일까지 국회법 제146조와 제155조가 제시한 ‘모욕적 발언 금지 의무 위반’으로 요구된 징계안 중 가결된 사례는 단 1건도 없었다는 설명이다. 이는 우리 국회가 모욕적 발언 등에 대한 경각심과 자정 노력이 현저히 부족하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면책특권은 국회의원이 양심과 소신에 따라 발언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임과 동시에 국민의 정보 접근성을 개선하고 알 권리를 충족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 국회에서는 정부를 견제하고 감독해야 할 국회의원의 본질적 책무와는 무관한 개인의 범법행위에까지 면책특권이 언급되는 등 남용 문제가 끊이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해당 제도의 기원인 영국에서도 면책특권은 ‘의회의 핵심 기능을 보호할 때만 유효하다’는 견해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에서도 면책의 범위와 국회의 책임 등에 관한 쟁점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등 적극적인 논의가 시작되길 기대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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