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류 국가, 2류 인재] ⑦고숙련 노동력이 한국에 이민오도록 만들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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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bii research
고숙련 인력을 데려오고 싶지만, 한국이 이미 잘 하고 있는 산업이 아니면 인재 모시기 어려워
한국의 강점에 속하는 산업군 위주로 숙련 인력 이민 경험치를 쌓는 것이 먼저
무조건 선진국 출신이라고 가산점을 주는 관점도 피해야

이민청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 중인데, 많은 관계자들이 고숙련 노동력을 한국에 적극적으로 유치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발언들을 내놓는다.

그런데, 한국인 유학생들이 한국에 귀국 안 하는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를 한번 따져보면, 저 발언들이 얼마나 자기 중심적인 생각을 담고 있는지 넘겨 짚을 수 있다. 지난 2013년부터 2022년까지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국내 이공계 인력 중 무려 30만 명이 한국을 떠난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 사회에 가장 잘 적응한 고급 인력들이 한국이 싫다고 떠나는데, 한국 사회에 문화적, 언어적으로 적응하는데 상당한 시간을 써야하는 해외 고급 인력들이 굳이 한국에 이민오려고 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한국 귀국 후 지난 6년간 한국 사회에서 속칭 ‘지식 산업’들이 돌아가는 구조가 얼마나 충격적인지 장기간 글을 쓰며 지적을 해 왔는데, 가까운 친구들에게 “그러니까 들어오지 말랬는데 왜 왔냐”, “왜 한국가서 그렇게 고생하냐”는 표현들을 자주 듣는다. 비단 나 한 사람의 문제는 아닐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유사한 경험을 겪고 있으니 지인들도 주변 경험에 기반해 그런 조언을 내놓는 것일텐데, 한국인 인재가 선택하지 않는 이 나라에 외국인 인재를 도대체 어떻게하면 끌고 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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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자본, 물적 자본의 평균 역량이 선진국보다 낮은 나라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이근 교수님의 주 전공은 ‘경제추격론’이다. 후발주자가 어떻게 선발주자를 따라잡는지에 대해 각종 연구를 하셨는데, 교수님의 평생 연구를 모두 갖고 올 수는 없고, ‘잘 하는 것에 집중’해서 ‘따라잡아야 하는 영역’에 ‘선별적인 지원’을 해주자는 관점 하나를 빌려오고 싶다. 비슷한 논리를 170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 ‘유치산업보호론’에서 찾을 수도 있고, 최근들어서는 스타트업의 고속 성장을 설명하는 경영학 이론에서도 찾을 수 있다.

한국 전체로 봤을 때는 미국, 일본 및 서유럽의 주요 국가들 대비 경쟁력 있는 이민처가 될 수는 없지만, 특정 산업에서 자신의 역량을 뽐내고 싶은 인재 입장에서 한국이 해당 산업으로 독보적인 역량을 갖고 있으면 한국을 매우 높은 순위로 고려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한국이 전셰계적인 강점을 가지게 된 K-POP, K-OTT, K-Culture 콘텐츠들이다. 일본 엔카(演歌 , えんか)를 한국어로 번안한 트로트와 미국 재즈(Jazz) 정도가 대중들에게 소비되는 음악의 전부였을 6·25 전쟁 직후의 한국을 기억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상상도 못하는 일이겠지만, 지난 80년 동안 한국의 대중 문화 역량은 어마어마한 발전을 이룩했다. 전국에 수 만개의 노래방이 생길만큼 문화적 기반이 있는 상태에서 그 문화적 기반을 활용하는 인재($H$)가 있었고, 일본과 미국에게 차례로 (반)식민지 경험을 하면서 얻은 문화적 자본($K$)이 있었고, 지난 20여년 동안은 국가 경제가 성장하면서 자본력($M$)이 받쳐줬다.

유사한 도전이 성공한 산업군이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한국의 메모리 반도체는 전세계 공급망의 핵심 축 중 하나를 구성하게 됐는데, 이건희 당시 동양방송 이사가 한국반도체를 인수하던 1974년에 한국이 반도체 공급망의 핵심국가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정부와 기업이 계속해서 미국 명문 공대로 인재들을 유학 보냈고($H$), 반도체 불모지인 한국에서 연구를 하고 공장을 지으면서 수십 년간 지식을 쌓았고($K$), 삼성그룹 전체의 수익금을 모두 부어넣으면서($M$) 자회사 하나 정도가 아니라 산업군 하나를 통째로 키웠다.

이공계-고급인재-탈-한국-현상_2024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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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잘 하는 산업, 그런데 인재가 부족한 산업

평균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한국보다 더 선진국 인력이 굳이 한국을 선택할 이유는 없다.

  • $Y_{K}$ = $v_{K} \cdot H^{\alpha}_{K} \cdot K^{\beta}_{K} \cdot M^{\gamma}_{K}$
  • $Y_{F}$ = $v_{F} \cdot H^{\alpha}_{F} \cdot K^{\beta}_{F} \cdot M^{\gamma}_{F}$

위의 식에서 $\alpha_F$가 $\alpha_K$보다 압도적으로 큰 인재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한국의 어느 직장을 가게 되면,

  • $Y_{K}$ = $v_{K} \cdot H^{\alpha}_{F} \cdot K^{\beta}_{K} \cdot M^{\gamma}_{K}$

같은 상황이 벌어지는데, 한국의 기업들이 $\beta$, $\gamma$를 자기 눈높이에 맞게 바꿔 줄 확률은 희박하다. 아예 회사 자체의 체질을 뒤바꿔야 될텐데, 그런 개혁은 아무리 작은 기업이라도 단기간에 이뤄내기 쉽지 않다. 그럼 결국 ${\beta}_{K}$와 ${\gamma}_{K}$의 수준에 맞춰 자기 자신의 ${\alpha}$를 조절해야 한다. 한국 평균이 더 낮으니까, 한국 수준으로 자신의 역량을 낮춰서 발휘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는 것이다. 억지로 자기 혼자서는 ${\alpha}_F$를 유지하고 싶어도,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이 회사 안에 없을 것이고, 한국 시장 안에 없을 것이다. 이런 분들을 뽑아야 하는 거의 유일한 산업군은 해외 수출을 매우 적극적으로 하고 있는 기업, 한국 기업이지만 그 분이 $\beta$와 $\gamma$ 적응하는데 어려움이 상대적으로 적을 기업 밖에 없다.

식견이 부족한 탓에 우리나라에 그런 강소기업이 얼마나 많은지 알지 못한다. 아마 찾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한국의 고급 인력들이 세종시에 몰려있는 정부 산하 연구소가 아니면 국내에 귀국하려고 하질 않는 것이다. 나처럼 일반 대기업 인력들을 상대하고 있으면 눈 높이를 ${\beta}_{K}$와 ${\gamma}_{K}$로 낮춰야 되니, 사실상 대화 자체가 안 되는 벽치기가 될 수밖에 없다. 언어적, 문화적 제약이 낮은 한국 출신도 이런데, 해외 인력이 이걸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정책 설명을 10분간 귀기울여 듣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사전트(Sargent) 교수님이 ‘Bull sxxx’이라는 비속어를 국가 고위 관계자들 앞에서 대놓고 하셨는데, 아마 외국의 우수 인력이 한국 현실에서 그런 비속어를 뱉는 일이 매일 같이 반복될 것이다.

위의 표현을 좀 더 일반적인 상황으로 풀어내면, 결국 한국에서 고급 인재를 받아서 수용해 줄 수 있는 기관들, 즉 $\beta$, $\gamma$로 표현되는 생산효율이라는 측면에서 한국 평균보다 매우 뛰어난 기업들 일부가 겨우 그런 인력들을 수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그 분들은 코드 몇 줄 치면 AI 전문가라고 생각하는 한국 시장에 내가 황당함을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이 이상한 나라라고 욕을 하며 등을 돌리게 될 것이다. 그런 분들을 데려오려면 연봉도 많이 줘야되는데, 뭔가 중국과 중동 국가들이 은퇴 무렵이 된 ($\alpha$ 값이 내려간) 유명 축구 선수들에게 고액 연봉을 약속하고 1년 단기 계약으로 데려갔다가, 그 선수들이 중국과 중동을 이상한 나라라고 온갖 욕을 하며 떠나던 것들이 떠오른다.

한국 정부가 이민청을 만들면서 해외의 고급 숙련 인력을 받겠다고 열심히 주장하는데, 정작 그런 인력들이 자기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일자리가 없으면 헛된 구호에 불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올 것이라는 예측도 가능하다.

실제로 우리가 뽑을 수 있는 수준은 어떨까?

4년 쯤 전의 일이다. 한국에 이민 와 있다는 한 스페인 여성 분이 자기가 Data Scientist인데, 한국에서는 Python 같은 기초 언어로 코딩 강의나 하고 있는 상황이 너무 괴롭다며 우리 회사에 면접을 보러 온 적이 있었다. 유럽에서 이름만 들어도 전세계인 모두가 다 아는 초명문대의 박사과정에 합격한 상황인데, 자기는 유럽으로 돌아가기 싫고, 한국에서 계속 일하고 싶으니까, 그리고 내가 자신의 역량을 알아봐 줄 수 있을 것 같으니까 꼭 우리회사에서 일하고 싶다고 하시더라.

스페인에서 댁 근처에 있던 어느 대학에서 화학생명공학 관련 석사를 하신 분이었는데, 촉매 같은 것을 넣어서 반응 값이 화학적으로 어떻게 구성될지를 시뮬레이션하는 작업을 한 논문을 나한테 보여줬었다. 시뮬레이션에 넣어야 할 데이터 열(Column)이 너무 많아서 PCA라는 차원 축소법을 썼다고 하던데, 내가 화학생명공학이야 문외한이지만, 이런 Factor analysis 기반의 계산은 나름대로의 전문성이 있어서 관련된 질문을 몇 가지 던졌다.

내가 화학 반응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은 잘 모르지만, PCA가 정보 손실을 상당히 만들어 낼 텐데, 정확도를 유지하기 위해 어떤 고민을 했는지, PCA가 아니라 일반적인 Factor analysis를 데이터 사정에 맞게 응용하기 위해 분포함수를 따져본 적은 있는지, 딥러닝 류의 비선형적인 PCA를 적용하려면 데이터 구조를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화학 실험에 영향을 미치는 데이터 자체는 어떤 구성을 갖는지 질문해 봤다. 아마 SIAI 학생들이라면 논문 주제라고 갖고 왔을 때 내가 흔히 저런 질문들을 하니 익숙할 것이다.

그 학생 분은 당황한 표정으로 대답을 전혀 못 하시더라. 너무 질문이 어려웠나 싶어서 PCA를 돌리기 위해서 Vector decomposition 작업을 했어야 할텐데, 그 때 Eigenvalue, eigenvector들을 이용해서 데이터를 재구성해본 적은 있냐는 질문도 해 봤고, 여전히 얼어 있길래 학부 1학년 선형대수학에서 배웠을 Vector decomposition을 물었는데도 제대로 대답을 못했다.

같은 종류의 질문을 2016년에 뉴욕의 어느 헤지펀드에서 러시아 억양이 강하게 묻어나는 한 매니저와 ‘인턴’ 면접을 보던 중에 받은 적이 있다. 그 때도 딥러닝(Deep-learning)을 왜 저렇게 사람들이 광적으로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며, 그거 그냥 Factor analysis를 Network에서 돌린 거라고 생각한다고 대답하니까 면접관이 만족스럽게 해 맑은 웃음을 지었던 기억이 나는데, 1단계 기초 면접 질문도 대답 못하는 그 스페인 출신 외국인이 유럽에서 STE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Math, 즉 한국식 이과) 전공으로 석사 학위가 있다는 이유로 한국에서 영주권을 받는데 큰 문제가 없었다는 답변을 들으며 한국에서 뽑을 수 있는 인재의 수준에 근본적인 회의감이 들었었다. 이민 심사관이 ‘유럽’ 출신이라는 이유로 가산점을 줬는지 모르겠지만, 유럽에서 A급 시뮬레이션 인재가 과연 한국에 직장 찾으로 올 일이 있을까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여기는 시뮬레이션을 제대로 이해하는 인력과 시장이 사실상 없는 나라인데.

아마도 한국이 글로벌 시장에서 매우 경쟁력 있는 산업이 아닌 모든 영역에서 ${\alpha}_{F}$값이 큰 분들이 한국보다 더 선진국들로 다 가고 난 다음에, 사실상 ${\alpha}_{K}$와 별 다를 바 없거나, 심지어는 더 낮은 수치를 가진 분들이 한국에 이민오고 싶다고 찾아올 것이다.

그런데, 그 분들이 STEM 학위자라는 이유로 한국 이민에 큰 이득을 보는 이 구조 속에 과연 고급 인재를 유치할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우리가 원하는 인재는 우리가 매우 잘하는 영역, 그런데 해외 인재를 뽑으면 더 잘할 수 있는 영역에 국한해야 위의 PCA 같은 사태가 안 터질 것이다. 나는 이미 저런 수준의 인재들을 한국에서 너무 많이 봤고, 아예 회사에 뽑아 쓸 가치도 없는 인재들이라고 생각하는데, 같은 수준의 해외 인력을 굳이 뽑아야 할 이유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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