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전문성 넘치는 이창용 한은 총재의 당당한 행보와 정치권의 왜곡된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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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용 총재, 국회의원 선거 출마한 전 대통령실 홍보수석과의 회담에 중립성 침해 도마
관계자들 "이 총재 성향 때문일 뿐"이라 일축, "항상 경청하는 자세가 몸에 배인 분"
재정 정책에 통화 정책 목소리 내던 이 총재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도

지난 11일 국민의힘 김은혜 국회의원 예비후보가 한국은행 이창용 총재와 대면 후 기준금리 인하를 부탁했다는 사실을 자신의 SNS에 올린 것이 정치권에서 일파만파로 확대 해석 되고 있다. 당시 김 후보는 이 총재에게 분당 지역을 비롯한 수도권 주요 지역의 재건축이 조기에 진척될 수 있도록 기준금리 인하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에 유희준 한은 노조위원장은 즉각 한은이 정부의 영향 없이 독립적으로 통화정책을 결정해야 하는 기관이라는 기대를 깼다고 비판했다. 특정 후보가 총선을 앞두고 본인의 선거 운동에 한은을 선전도구로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은 노조위원장의 주장에 관심이 집중됐던 이유는 그간 한은이 과거부터 ‘재무부의 남대문 출장소’라는 별칭으로 불릴 만큼 정책 결정권자의 의지에 따라가는 기관이라는 인식이 퍼져있기 때문이다. 한은 주요 관계자들은 아무리 독립성을 주장해도 시장이 이해해 주지 않는다는 하소연도 하는 만큼, 이번 사안을 김 후보의 무리한 선거운동이라기보다 이 총재의 판단 착오라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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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 이창용 총재(좌)와 김은혜 국민의힘 국회의원 경기 성남을 예비후보(우)의 모습/사진=김은혜 예비캠프

전문성 넘치는 한은 총재, 과거 총재들보다 정부 회의에 더 적극 참여

한은 내부에는 비단 이번 사건뿐만 아니라 이 총재가 경제부총리 및 금융당국 수장들과 매주 정례적으로 만나 정책 방향을 논의하는 것에 대한 불만도 있다. 심지어 국무총리가 주재하는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도 주기적으로 참석하는 것을 놓고, 한은의 독립성을 퇴색시키는 행보라는 평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이 총재는 “한은이 정부를 만나서 정부에 영향을 준다는 생각은 안 하나, 정부의 독립성이 사라진다고 왜 거꾸로 안 물어보냐”고 반문한 바 있다. 금융권 주요 관계자들은 과거 한은과 정부 경제 부처 간의 권력관계를 감안할 때, 이 총재의 주장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그러나 이 총재를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인사들의 반응은 사뭇 다르다. 이 총재가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 중에 연구실 조교로 있었던 A씨는 “교수님은 아무리 바빠도 학생들에게 짧게라도 시간을 내 주시는 분”이라며 김 후보의 이번 방문도 정부 정책 관계자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관점에서 시간을 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총재가 지도교수로 있었던 한국고등교육재단의 장학생 B씨도 “졸업 후 커리어 상담 차원에서 메일로 찾아뵙겠다고 연락드리면 1분이라도 시간내서 방향 설정을 해주셨다”며 주변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고 도와주려는 마음이 이번 사건에도 반영됐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스펙’ 뛰어나다 보니 굳이 기관 권력 서열에 개의치 않아

서울대 경제학부 출신이 대거 포진된 관가에서도 역대 한은 총재와 이 총재의 행보를 구분해서 판단해야 한다는 의견이 주류다. 이전 한은 총재들은 한은 총재직 이후 국내 기관으로의 영전 등을 감안해 경제부총리 및 주요 정책 당국자들의 의견에 끌려갈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이유가 있었지만, 이 총재의 경우는 서울대 교수직 이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아시아개발은행(ADB) 수석 연구원에 이어 국제통화기금(IMF)의 아시아 연구 총괄직을 맡기도 했던 만큼, 임기 이후 해외로 다시 나갈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이 총재가 과거 서울대 경제학부 수석 졸업에 이어 하버드대학교 경제학 박사 학위를 마친 점, 이후 미국 명문대 중 한 곳인 로체스터대학에서 교수로 재임하다 서울대 교수로 귀국했던 점 등을 들어, 본인의 역량이 매우 뛰어난 데다 학자 성향이 강한 인물인 만큼 정부 기관들의 권력 서열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평가도 있다. 인터뷰에 응했던 A, B씨 모두 이 총재가 교수 시절부터 한은이 독립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이유로 정부 기관들과 의사소통을 닫을 것이 아니라, 거꾸로 한은의 입장을 분명히 전달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서울대학교 출신들이 주류를 이루는 여의도 금융시장 주요 관계자들도 “(이창용) 교수님이 정부에 압력받는다고 끌려다니실 분은 아니다”라는 평가를 내놓는다. 이 총재가 정부 관계자들을 만나서 거꾸로 한은 사정을 설명할 수 있다는 반박에 대해서도 과거 이 총재가 보여준 면면을 봤을 때 충분히 납득 가능하다는 반응들이다. 정면에서 틀린 것을 틀렸다고 지적하는 올곧은 학자는 아니지만, 잘못된 것을 고치기 위해 설득, 설명하는 과정을 계속하는 의지력을 갖춘 절충형 학자라는 견해도 나왔다.

사소한 정치적 논란으로 발목 잡기보다 ‘물가 관리와 경기 부양’, 두 마리 토끼 잡도록 지원해야

지난 1월 글로벌 금융전문지 더뱅커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올해의 중앙은행장으로 이 총재를 선정하면서 IMF, ADB에서 근무했던 경력과 물가 관리 역량 등을 발탁 이유로 언급했다. 정부 당국이 부동산 경기 부양을 위해 유동성 공급 정책을 연이어 내놨으나 타 선진국보다 인플레이션 둔화 속도가 더 빠를 수 있도록 관리한 점, 이자율 추가 상승 없이도 원-달러 환율을 1,300원대로 관리한 점 등도 시장에서 이 총재를 높게 평가하는 부분이다. 금융권 관계자들은 정부 당국과 협의에 나섰던 부분이 주요 금융통화정책 목표들 달성에 더 도움이 됐을 수도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현재 금융권에서는 한은이 장기간 정책금리를 3.5%에서 유지하고 있는 것을 두고 정부의 압박 때문이라기보다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부동산 경기 침체와 대중 무역 흑자 감소 등이 한국 경제를 짓누르고 있는 가운데, 자칫 물가를 잡겠다고 금리를 더 올릴 경우 기업들의 연쇄도산이 생길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아울러 그간 정부 당국을 상대로 적극적으로 통화 정책 관점의 목소리를 내 온 한은 총재가 되려 이같은 논란으로 몸을 사리고 재정 정책과 통화 정책이 따로 움직이게 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 후보의 정치적 목표로 왜곡된 이번 사건 역시 정책 당국의 의견을 귀담아듣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기 위해 고민하는 사건 중 하나로 해석해야 한다는 평이 대세를 이루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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