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만의 금리 인상에도 ‘엔저’ 지속, 日 당국 직접 개입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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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이후 34년 만에 엔화 가치 최저치 기록
견고한 강달러 및 미온적 통화긴축 기조가 원인
엔·달러 환율 155엔 넘으면 실개입 나설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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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화가 달러당 152엔에 근접하며, 버블 경제 시절이던 1990년 이후 약 34년 만에 최저치를 경신했다. 지난 19일 일본은행의 마이너스 금리 해제를 계기로 엔화 약세에서 벗어날 것이라는 예상과는 반대로, 엔저 고삐가 풀린 모양새다. 시장은 일본은행의 미온적인 통화긴축과 견고한 강달러를 원인으로 지목한다. 이런 가운데 시장의 눈은 일본 금융당국의 실개입 여부에 쏠리고 있다. 사실상 실개입 외에는 ‘슈퍼 엔저’를 방어할 마땅한 방법이 없어서다.

‘마이너스 금리’ 끝냈는데 엔화 약세, 왜?

27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엔화 가치는 151.97엔까지 밀리며 1990년 7월 이후 약 34년 만에 최저를 기록했다. 이날 오전 달러당 151엔 초반~중반대에서 등락을 거듭하던 엔화값은 오전 10시 이후 급락하기 시작해 11시 이후 151.97엔을 기록, 지난 2022년 10월 기록했던 151.94엔마저 밑돌았다. 앞서 일본은행은 지난 19일 금융정책결정회의를 통해 단기금리를 연 0~0.1%로 0.1~0.2%포인트(p) 인상하며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종료했다. 사실상 돈 풀기 정책을 중단한 조치로 엔화 가치가 오를 것으로 기대됐으나 일반적인 시장 예상과 달리 오히려 하락한 것이다.

엔화 약세 요인으로는 크게 두 가지가 거론된다. 먼저 일본은행의 미온적인 정책 기조다. 마이너스 금리 탈출에도 완화적 통화정책이 유지될 것이란 전망 때문이다. 앞서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는 지난 19일 금융정책결정회의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향후 어느 시점에 국채 매입 축소를 고려할 것”이라며, 수익률곡선통제정책(YCC)이 끝난 뒤에도 대략적인 국채 매입이 이어질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사실상 당분간 완화적 금융정책을 고수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자 엔화 매도세가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지난 22일 0.743%까지 올랐던 일본 국채 10년물 금리는 현재 0.726%까지 떨어졌다. 특히 선반영된 부분이 되돌려지면서 지난 25일에는 0.713%까지 떨어지는 약세를 보이기도 했다.

두 번째 요인은 견조한 달러 강세다. 지난 21일 102.8선까지 떨어졌던 달러인덱스는 현재 104선을 돌파하며 강세를 보이고 있다. 예상보다 완화적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정책 기조에 하락했던 달러 가치가 견조한 경기지표에 반등하면서다. S&P 글로벌에 따르면 미국 3월 구매관리자지수(PMI)는 52.5로, 2022년 6월 이후 21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제조업 부문의 성장세가 달러 가치를 견인한 것이다.

여기에 2월 미국 기존주택판매도 438만 채로 한 달 새 9.5%나 증가했으며, 신규실업급여 청구건수(10~16일) 역시 21만 건으로 예상치인 21만2,000건을 소폭 밑돌았다. 2월 내구재 주문 역시 전월 대비 1.4% 증가하며, 예상치(1%)를 상회하는 등 전반적인 경기지표가 호조를 보였다. 이에 지난 23일 4.19%까지 하락했던 미국채 10년물 금리는 현재 4.235%까지 반등했다. 통화정책에 민감한 2년물 금리도 4.6%에 근접하는 등 강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 7월, 10월 추가 금리 인상 점쳐져

엔저 현상이 계속되자 시장에선 추가 금리 인상이 점쳐지고 있다. 일본 주요 은행 간부는 니혼게이자이신문에 “엔화 약세에다 유가 오름세 등도 있어 물가 상승이 가속화 할 가능성이 있다”며 일본은행이 조기 추가 금리 인상을 강요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도 지난 19일 기자회견에서 추가 금리 인상에 대해 “경제·물가 전망에 따라 대응하겠다”고 밝히는 등 인상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현재 시장에선 일본은행이 올해 적어도 한 차례의 금리 인상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가장 유력시되는 시점은 10월이다. 일본은행 관계자는 “마이너스 금리 해제 뒤 경제·물가를 반년 정도 살피고 난 뒤라 급격한 인상이라는 인상을 주지 않고 움직일 수 있다”고 내다봤다. 올해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가 예정돼 있다는 점도 10월 금리 인상설을 뒷받침한다. 실제로 미 대선이 끝나면 대내외적 변수가 커지는 만큼, 일본은행 내에선 자유롭게 판단할 수 있는 시기에 움직이는 것이 좋다는 분위기가 퍼져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7월 인상 의견도 나온다. 엔저로 수입물가가 올라 물가 상승이 가팔라질 경우 인플레이션 대응 차원에서 추가 금리 인상을 앞당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일본 총무성 자료에 따르면 일본 소비자물가(신선식품 제외)는 지난해 2월부터 8월까지 3%대를 유지하다가 9월 2.8%에서 올해 1월 2%로 내려온 상태다. ‘잃어버린 30년’이라 불리는 장기 불황 속에서 물가 변동을 체감하지 못하고 지내온 일본 국민들 입장에선 2~3%대 물가 상승도 심각한 타격이다. 다만 미국을 비롯한 해외 주요국 중앙은행의 금리 인하 여부는 변수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하 시점에 일본은행이 금리를 올리면 급격한 엔화 가치 상승 가능성도 있다”며 “일본은행은 일본 안팎의 정세를 살피면서 신중하게 추가 금리 인상의 여지를 살필 예정”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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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엔, 심리저항 152엔 넘어서면 실개입 가능성

이런 가운데 시장에서는 엔·달러 환율이 달러당 155엔을 넘기면 정부가 엔화 지지를 위해 엔화를 매입하고 달러를 매도하는 직접 개입에 나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일본 당국과 시장은 달러당 152엔을 심리적 저항선으로 간주하고 있다. 즉 152엔선이 무너지면 엔화가치가 달러당 155엔까지 급락할 수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일본 당국의 행보에 비춰볼 때 꾸준한 구두개입·경고를 통해 포석을 깐 후 달러·엔 환율이 152엔을 돌파했을 때 ‘선개입·후보고’ 방식으로 실개입에 나설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일본이 가장 최근에 실개입에 나섰던 2022년 9월에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진행됐다. 당시 일본 금융당국은 달러·엔 환율이 150엔에 근접하자 연일 구두개입에 나섰고 150엔을 넘어서자 약 한 달간 총 세 차례에 걸쳐 총 9조1,000억 엔 규모의 엔화를 사들였다. 당시 엔화 가치는 달러당 145엔 안팎이었다. 일본은 실개입 이후에야 미국과의 사전 합의 사실을 밝혔고, 미국도 보고를 받았다며 개입 용인을 확인했다.

실제로 최근 스즈키 슌이치 일본 재무상은 달러·엔 환율이 152엔에 근접할 때마다 “과도한 움직임에는 모든 선택지를 배제하지 않고 단호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되풀이하고 있다. 일본 당국이 외환시장에 개입할 수 있는 수단은 사실상 구두개입과 실개입뿐인 만큼, ‘모든 선택지’를 언급한 것은 실개입을 예고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와 관련해 닛케이는 “2022년 엔 매수 개입 당시에도 스즈키 재무상이 ‘단호한 조치’라는 말을 사용했다”며 “이에 시장에선 정부와 BOJ가 엔저를 억제하기 위해 엔화 매입·달러 매도 개입을 단행할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고 전했다.

실개입은 ‘외환자금특별회계’를 통해 이뤄진다. 일본 재무성이 특별회계의 운영 주체로, 일본은행과 협조해 안정적 환율 유지를 책임지고 있다. 재무성이 단기증권을 발행해 특별회계 자금을 조달하고, 민간 은행이 이를 활용해 외환시장에 공급되는 화폐를 매입하는 방식으로 실개입을 진행하게 되는데, 엔화가 강세일 때는 주로 달러화 또는 유로화를 매입하고, 반대로 엔화가 약세일 경우엔 엔화를 매입한다. 단, 무분별한 시장 개입을 막기 위해 개입 한도액은 일본 정부 예산 편성 시 의회가 승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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