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ELS 제재 본격화, 은행권 줄소송 우려 여전하지만 “CEO 제재는 피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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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H지수 ELS 손실 제재 절차, 과징금 최대 8조5,500억원
선제적 자율배상에 과징금 감경 가능성 있지만, "소송 우려는 여전"
CEO 징계 후 패소 반복했던 금융당국, "7월 이전 CEO 징계는 없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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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감독원이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손실과 관련해 판매 은행에 검사의견서를 발송하고 제재 절차에 나섰다. 금융권에선 은행들이 자율배상에 나선 만큼 금감원의 과징금 경감 수준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특히 은행들은 2019년 해외금리 연계형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와 비교해 최고경영자(CEO) 제재 여부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책무구조도가 도입되지 않은 만큼 CEO 제재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지만, 금감원이 거듭 눈총을 보내고 있단 점은 당분간 은행권에 있어 부담으로 작용할 여지가 있다는 평가다.

금감원, 홍콩H지수 ELS 제재 절차 돌입

8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감원은 조만간 국민·신한·하나·농협·SC제일은행 등 홍콩H지수 ELS를 판매사에 검사의견서를 발송할 계획이다. 검사의견서에는 현장검사에서 적발한 불완전판매 정황이 담겨 있다. 이후 금감원은 판매사로부터 소명 의견서를 받고 제재심의위원회를 거쳐 제재를 확정할 방침이다.

이번 ELS 사태는 불완전판매로 인한 첫 과징금 부과 사례인 만큼 제재 수위에 눈길이 쏠린다.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에 따르면 불완전판매 시 금융사는 전체 판매액의 최대 50%까지 징벌적 과징금을 낼 수 있다. 금소법이 도입된 이후 은행권이 판매한 홍콩H지수 ELS는 17조1,000억원으로, 최대 과징금은 8조5,5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은행권은 자율배상에 나선 데 따른 과징금 경감을 기대하는 모습이다. 앞서 하나은행은 지난달 29일, 신한은행은 지난 4일 각각 자율배상을 시작했다. 금융당국이 선제적 자율배상 시 제재를 감경해 주겠다고 언급한 영향이다. 이에 대해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해외에서도 금융사고 발생 시 금융사가 자율적으로 보상에 나서면 과징금을 경감해준다”며 “경감액은 처벌 수위나 사안에 따라 다르다”고 설명했다. 앞서 이복현 금감원장이 직접 “이해관계자에게 원상회복 조치를 보인다면 과징금 감경 요소로 삼는 게 당연하다”고 밝힌 바 있기에 감경 조치는 어느 정도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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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배상 이뤘지만, 줄소송 우려에 은행권 ‘긴장’

다만 은행권에 있어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소송의 가능성이다. 배상 금액에 만족하지 못한 이들이 줄소송을 걸어오면 은행 입장에서 큰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달 홍콩H지수 ELS 피해자들은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 본부 앞에서 3차 집회를 열고 배상안 재산정 등을 촉구한 바 있다.

당시 길성주 홍콩 ELS 피해자모임 위원장은 “(은행의 배상안은) 피해자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은행의 입장에서만 유리하게 만들어진 배상안”이라며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소한 (기본배상) 비율이 60~70% 이상은 나와야 한다”며 “각 은행에서 (자율 배상안을 기초로) 얼마나 충분하게 배상하느냐를 보고 투자자의 입장과 맞지 않으면 집단 분쟁조정도 강행할 것이고, 그것도 이뤄지지 않는다면 집단 소송도 할 예정”이라고 역설했다.

물론 소송이 자율 배상보다 실익이 클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의견이 많다. 과거 DLF와 비교해 ELS는 상품 자체의 구조적 문제를 발견하기 어렵고 공모 방식으로 진행된 보편적인 상품이라는 점에서 불완전판매 소지가 명백한 사례가 아닐 경우 소송을 통해 더 많은 금액을 배상받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게 법조계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그러나 지난해 1월 DLF 배상 소송에서 처음으로 투자자가 승소한 사례가 나온 만큼 배상 비율에 이의가 있는 이들은 일말의 희망을 갖고 소송까지 이어갈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 따르면 당시 재판부는 DLF를 판매한 하나은행 측이 투자자에게 상품 구조와 손실 위험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고 판단했는데, 이번 홍콩H지수 ELS에 대해서도 은행 측이 설명 의무를 위반했다는 점이 인정되면 줄소송에서 은행이 패소할 가능성도 완전히 없지는 않다.

CEO 제재는 어려울 듯, “금융당국 입장에서도 부담”

은행권이 그나마 안도하는 부분은 CEO 제재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는 점이다. 그간 CEO 징계 후 패소를 반복해 온 금융당국이 또 한번 부담을 늘리지는 않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당국은 앞서 DLF 사태 때도 경영진의 내부통제 부실을 이유로 판매 은행 CEO에 문책 경고를 내린 바 있지만, 당시 손태승 전 우리금융 회장은 징계취소 소송을 진행해 승소했다. 법원은 지배구조법상 내부 통제 기준은 자율 규제 사항이기 때문에 중징계를 내릴 근거가 되지 못한다는 입장이었다.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의 경우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는데, 1심에선 패소하고 2심에선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았다.

금감원이 CEO 제재를 내렸다 역풍을 맞은 사례는 이외에도 많다. 황영기 전 KB금융 회장 사례가 대표적이다. 황영기 전 회장은 2009년 우리은행장에 재직하던 시절 파생상품 투자손실과 관련해 은행법 및 은행업 감독규정을 고의로 위반했다는 이유로 직무 정지 3개월 상당의 중징계 제재를 받았으나 2013년 끝내 제재 취소 판결을 받았다.

2015년엔 박동창 전 KB금융지주 부사장이 금감원을 상대로 제기한 징계처분 취소소송에서 승소한 바 있고,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은 2004년 국민은행 부행장 시절 회계처리 부정 의혹으로 문책 경고를 받았으나 2015년 대법원으로부터 무죄 판결을 받았다. 금융 사고 발생 시 내부 통제 실패에 따른 CEO의 책임을 명시한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본격 시행되는 7월 이전엔 금융당국도 CEO 문책 경고를 내리는 데 보다 신중할 수밖에 없을 거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더군다나 이번 ELS 사태는 판매 과정에서 문제가 일어난 만큼 더더욱 처벌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대해 이효섭 연구위원은 “DLF 사태 때와는 달리 ELS 사태에서는 상품 자체에는 문제가 없는 만큼 현행법상 위반 근거가 부족해 CEO 처벌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며 “책무구조도 마련 이후 거버넌스가 체계화되면서 역할과 책임이 명확해지면 제재가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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