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 터진’ 삼성전자 숨통 터준 美, ‘악화 일로’ 미중관계 전환점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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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반도체 장비 반입 규제 해소한 美, 삼성전자 숨통 트였다
관계 개선의 실 보였나, "미중 긴장 완화 기대감 커져"
여전히 '팽팽'한 막판 줄다리기, "中 '견제 포메이션' 여전"
삼성전자 중국 시안공장 전경/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가 중국 시안 낸드플래시 공장 전환에 나선다. 현재 생산 중인 낸드플래시 라인을 업그레이드하겠단 계획이다. 미국 정부의 반도체 장비 반입 규제가 해소되면서 평택에 이어 시안까지, 세계 최대 낸드플래시 업체인 삼성전자의 선단공정 전환이 빨라지고 있다. 미중 갈등 사이에서 애꿎은 피해를 보던 삼성전자의 숨통이 다시금 트이기 시작하면서 미중 정상회담에 앞서 미중 관계 개선의 물꼬가 삼성전자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전자, 낸드 공정 전환 본격 시작

2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 공장을 128단(V6)에서 236단(V8) 공정으로 전환하기로 결정했다. 2025년까지 공정 전환이 목표다. 삼성전자는 앞서 평택 1공장(P1) 낸드 공정도 전환을 시작한 바 있다. P1에서도 128단 낸드 공정을 236단으로 바꾸기로 했다. 경기 침체로 128단 낸드가 재고로 쌓이자 구형 제품 생산을 줄이고 앞으로 수요가 늘어날 236단 낸드를 공급하기 위한 결정이다. 낸드플래시 단수는 셀을 적층한 수로, 숫자가 높을수록 용량이 늘어난다. 236단 낸드는 현재 기준 삼성전자 최선단 낸드다. 삼성전자는 300단 전후의 차세대 낸드(V9)를 내년 초 양산한다는 계획이지만 상용화된 제품으로는 236단이 가장 최신이다.

삼성의 이번 중국 시안 공정 전환은 업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다름 아닌 미국의 반도체 장비 규제 때문이다. 시안 공장은 삼성 낸드 생산량의 약 40%를 담당하는 핵심 공장이지만 최근 시황 악화로 128단 낸드는 만들면 만들수록 재고로 쌓였다. 이에 삼성은 이전부터 시안 공정 전환을 고려했으나, 미국의 장비 규제가 걸림돌로 작용했다. 미국이 200단 이상 낸드를 만들 수 있는 장비를 중국에 수출하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바람에 진퇴양난에 빠진 것이다. 그러나 지난 10월 드디어 길이 열렸다. 미국 정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공장에 대해 별도 허가 절차나 기한 없이 미국산 반도체 장비를 공급하기로 최종 결정하면서다. ‘검증된 최종 사용자(VEU)’로 지정되면서 제한 없이 장비 반입이 가능해지자 삼성은 시안 선단 공정으로의 전환을 재빠르게 결정했다.

한발 물러선 美, 관계 개선의 시발점?

당초 업계는 중국 공장에의 설비 충당을 미국이 승인해 주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미중 갈등이 시간을 지날수록 악화 양상을 보였기 때문이다. 앞서 미국은 지난해 10월 자국 첨단 반도체 칩과 18나노(㎚) 이하 D램, 128단 이상 낸드, 14나노 이하 로직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첨단 장비의 중국 반입을 전면 금지시킨 바 있다. 첨단 기술 분야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함인데, 쉽게 말해 퀄컴의 통신칩,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의 첨단 반도체 제조 장비를 중국에 들이지 않겠단 의미였다. 이와 관련해 한 업계 관계자는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서슬 퍼렇게 지켜보는데 첨단 공정을 중국에 구축할 수 있겠나”라며 “삼성으로선 결정이 쉽지 않을 것이고 시안은 레거시 공정으로 남길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그러나 상황이 급변했다. 미국이 ‘양보’를 택하고 나선 것이다. 이에 일각에선 곧 예정돼 있는 미중 정상회담과 관련 있는 행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외신에 따르면 오는 12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미중 정상회담이 개최되는데, 정상회담을 기점으로 수년째 악화 일로를 걷고 있는 미중 전략 경쟁을 다소 걷어내고 관계 개선의 물꼬를 트기 위해 삼성을 ‘외교 재료’로 사용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실제 앞서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왕이 중국 왕이 외교부장과의 회담 중 “미중 경쟁 관계를 책임 있게 관리하면서 열린 소통채널을 유지해야 한다”는 언급을 내놓은 바 있다. 관계 개선에 대한 의지를 내포한 문장을 슬쩍 던진 건데, 이에 왕 부장은 “대화를 통해 오해와 오판을 줄이자”고 화답했다. 미중 정상회담이 그간 쌓여 온 양국 간 악감정을 모두 해소할 순 없겠으나, 최소한 상호 이해를 도모하면서 긴장 수준을 누그러뜨리는 데엔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이유다.

정상회담 뜸 들이는 中, “아직 불확정 요소 많아”

미국이 ‘양보할 건 양보하겠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지난 8월 중국을 방문한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은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중국 경제를 총괄하는 리창 총리를 만나 “국가 안보에 있어서는 타협하지 않겠지만 중국과의 디커플링(탈동조화)을 추구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양국의 경제적 관계가 전반적인 관계 안정을 제공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면서 “미국은 기후변화와 AI, 펜타닐 문제 등 세계적인 관심사에 있어 중국과 협력하길 바라며, 세계는 우리가 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 나서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거듭 상생의 뉘앙스를 강조하기도 했다. 이후 미국은 경제·무역 분야에서 정례화된 소통 채널을 구축하기로 하면서 첨예한 갈등 상황을 관리하기 위한 일정한 합의를 도출시켰다. 주요 현안인 경제·무역 관계에서 갈등과 긴장 완화의 단추를 끼워나갈 수 있도록 미국 차원에서 한발 물러선 셈이다.

다만 미국의 이 같은 행보가 수출규제와 기업제재 등 양국 간 첨예하게 얽혀 있는 문제들을 풀어가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아직 미지수로 남아 있다. 중국의 ‘견제 포메이션’이 아직 풀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중국은 아직도 시진핑 국가주석의 APEC 정상회의 방문을 확정하지 않는 등 정상회담에 뜸을 들이고 있다. 사실상 미국과 중국 사이의 ‘줄다리기’는 여전히 팽팽히 맞서고 있는 셈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이 시 주석의 일정 발표를 미루는 건 얻을 것을 최대한 끌어내려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시한은 APEC 정상회의가 결정된 시점부터 이미 정해졌다. 이제 남은 건 서로 세부 전략을 얼마나 구성하느냐의 문제다. 이와 관련해 한 외교가 소식통은 “미중 양국의 막판 줄다리기가 시작된 것”이라며 “주고받을 ‘재료’들을 교환하면서 당분간의 평화에 얼마나 많은 이익을 얻어 내느냐가 관건인 셈”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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