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 그만’ 폐원안 내놓은 서울백병원, 서울시 ‘도시계획시설 결정’ 초강수

누적 적자에 폐원 결정한 서울백병원, 유휴재산 ‘수익용 기본재산’ 전환 검토했나 서울시의 폐원 급제동, “도시계획시설 지정해 중구 의료공백 막겠다” 초강수 적자 경영과 의료 공백의 딜레마, 지자체-병원 논의 거쳐 상생안 찾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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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서울백병원

서울시가 인제대학교의 서울백병원 폐원안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서울시는 20일 도심 내 서울백병원의 기능이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서울백병원의 도시계획시설 지정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해당 절차를 신속 추진할 예정이라 밝혔다.

서울 명동성당 맞은편에 위치한 인제대학교 서울백병원은 지난 5일 만성적인 적자 끝에 폐원 수순을 밟겠다고 밝힌 바 있다. 교육부의 사립대학 재산 규제 완화에 따라 병원 사업을 청산하고, 이후 유휴재산이 된 부지를 수익용 기본재산으로 전환하려는 계획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서울시의 도시계획시설 결정 추진으로 인해 인제대학교의 계획은 물거품이 될 위기에 놓였다.

누적 적자 1,745억원, 폐원 후 재단 재정 충당하려는 그림?

앞서 서울백병원은 지난 5일 “서울백병원 경영정상화 테스크포스(TF)팀이 오는 20일 이사회에 ‘서울백병원 폐원안’을 상정한다”고 밝힌 바 있다. 장기간 누적된 대규모 적자 탓이다. 서울백병원의 최근 20년 간 누적 적자는 1,745억원에 달한다.

서울백병원은 2016년부터 TF팀을 꾸려 한때 500개 이상이었던 병상수를 올해 4월 122개까지 줄이고, 기금 유치를 추진하는 등 수익성 개선을 위해 노력해 왔다. 하지만 외부 전문기관의 경영 컨설팅에서 ‘차후 용도 전환이 불가피하다’는 결론이 나왔고, TF팀도 수많은 정상화 방안과 구조조정을 거쳤음에도 불구, 병원 사업의 흑자 전환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판단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최근 사립대학 재단이 보유한 유휴재산을 수익용으로 전환할 수 있게 하는 교육부의 규제 완화책이 폐원 결정에 힘을 실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대학이 보유하는 기본재산은 교육 용도로 사용되는 ‘교육용 기본재산’과 재단 운영에 사용되는 ‘수익용 기본재산’으로 나뉘며, 학교법인은 연간 학교 운영비의 10배 이상에 해당하는 수익용 기본재산을 확보해야 한다.

수익용 기본재산 기준을 충족해야 하는 인제대학교 입장에서는 더 이상 적자만 나는 병원 사업을 지속할 이유가 없어진 셈이다. 인제대학교는 규제 완화에 발맞춰 병원 사업을 정리하고,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서울백병원 부지를 수익용 기본재산으로 전환하려 계획했던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 ‘문 닫게는 못 둔다’ 초강수

하지만 서울시가 ‘도시계획시설 지정’으로 폐원 수순에 브레이크를 걸며 상황이 급변했다. 서울시는 서울백병원이 중구 내 유일한 대학병원이라는 점을 고려, 지역 내 의료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운영을 이어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서울시는 중구청에서 도시계획시설(종합의료시설) 결정(안)을 제출하는 즉시 주민 의견 청취, 도시계획위원회 심의 등 절차를 밟아나가겠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병원 측과 깊이 있게 논의할 수 있도록 서울백병원-서울시-중구청 등 관련 기관 간 협력 구조를 우선 구축할 예정이다. 서울시의 뜻대로 서울백병원이 종합의료시설로 결정될 경우, 해당 부지에서는 병원 외 다른 사업을 운영할 수 없게 된다.

이어 서울시는 도심 내 의료 기능을 유지하고, 공공의료의 급작스러운 기능 부재를 막기 위해 도심 내 종합병원의 일괄적인 도시계획시설 결정 추진 방안도 동시에 검토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종로구와 종로구 등 도심 일대에 위치한 서울백병원 이외 4개 종합병원(서울대병원, 적십자병원, 강북삼성병원, 세란병원)에 대한 도시계획시설 결정이 검토될 예정이다. 아울러 사립대 법인이 소유한 종합병원 부지는 타 유휴재산과 동일하게 임의로 매각하거나 용도를 전환할 수 없도록 교육부에 건의할 계획이다. 병원 사업을 정리하고 용도 전환을 통해 재단 재정을 충당하려던 인제대학교의 계획에 ‘결정타’를 날린 셈이다.

병원-지자체-구성원 충돌 이어져, 상생안 모색해야

한편 서울백병원 구성원들은 폐업에 반대 의견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16일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서울백병원 경영진을 향해 폐원 안건 상정을 철회하고, 병원 정상화를 위해 구성원의 여론을 수렴할 것을 촉구했다. 노조는 물론 교수협의회, 교수노조 등 구성원은 외부 경영 컨설팅 결과와 폐원안을 전달받지 못했으며, 서울백병원 측이 단 한 차례의 협의나 설명회도 없이 일방적으로 폐원을 추진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서울백병원 교수협의회 역시 폐원안에 반발하고 나섰다. 12일 교수협은 기자간담회를 개최하고 재단 측이 경제 논리로 병원 문을 닫겠다고 하고 있다며, 병원에 헌신한 교직원과 환자들의 의견은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서울백병원 조영규 교수협의회장은 “병원 적자는 구성원의 문제가 아님에도 재단은 교직원에서 책임을 돌리고 있다”며 “재단이 서울백병원 황금기에 얻은 이익과 자산을 본원에 투자하지 않고, 다른 병원을 건립한 경영 전략의 실패 때문”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지자체와 구성원의 반발이 이어지며 서울백병원의 폐원 계획에는 급제동이 걸렸다. 일각에서는 결국 서울시와 서울백병원이 논의를 통해 상생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000억원에 가까워지는 누적 적자를 떠안은 병원이 서울시의 무조건적인 ‘브레이크’를 받아들이기는 사실상 어렵다는 분석이다.

서울시가 서울백병원의 기능 유지를 통해 의료 공백을 막고자 한다면, 병원의 시민 사회 기여분을 감안해 적자 보전을 비롯한 경영 지원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차후 병원이 서울시에, 서울시가 병원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상부상조할 방안을 강구해 나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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