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 리스크’ 꺼내든 미국, 중국산 전기차 또 한번 ‘족쇄’ 차나

pabii research
반보조금 조사 시작한 EU, 미국도 중국산 전기차 규제 가능성 시사
중국 반발에도 아랑곳 않는 규제, 설상가상 '규제 확산' 낌새도
우리나라도 '대중 규제' 시작, '탈중국' 가속화에 중국은 '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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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부가 안보 리스크를 이유로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규제 가능성을 시사했다. 지난해 EU(유럽연합)의 반(反)보조금 조사 이후 미국마저 규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산 전기차 규제가 전 세계로 확대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 만큼 전기차 업계 내 중국의 영향력은 갈수록 줄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산 전기차에 ‘안보’ 내민 미국, 그 속내는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지나 러몬드 미국 상무장관이 지난달 30일(현지 시각) 싱크탱크 대서양위원회 간담회에서 “전기·자율주행차는 운전자와 차량 위치·차량 주변 상황 등 엄청난 양의 정보를 수집한다”며 “이런 정보가 중국에 보내지는 것을 원하나”라고 언급했다. 최근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전기차를 비롯해 중국 일부 상품에 무거운 수입 관세를 부과할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만큼, 이 같은 상황에서 중국산 전기차와 안보를 엮은 러몬드 장관의 속내는 명확하다. 사실상 중국산 제품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겠단 의미다. 앞서 지난해 10월 EU가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반보조금 조사에 착수한다고 밝힌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추가 규제를 시사한 만큼 중국 시장의 타격은 더욱 클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미국은 이미 중국의 전기차 시장 진출에 거듭 족쇄를 채워온 전례가 있다는 점에서 중국 시장 내 불안감은 더욱 커진다. 미국은 앞서 지난해 12월 전기차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외국 우려 기업(FEOC)’에 대한 세부 규정안을 발표하며 대중국 규제를 강화한 바 있다. 당시 미국이 발표한 자료에서 FEOC는 중국, 러시아, 북한, 이란 정부의 ‘소유·통제·관할에 있거나 지시받는’ 기업으로 명시됐다. 해당 국가와 연관성이 있으면 세액공제 혜택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현재 미국은 배터리 부품과 핵심 광물에 대한 원산지 요건을 충족하고 북미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에 대해 최대 7,500달러(약 999만원)의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하는데, 세부 규정안으로 인해 앞으로 혜택을 받기 위해선 배터리 부품은 2024년부터, 배터리에 들어가는 핵심 광물은 2025년부터 FEOC에서 조달하면 안 된다. FEOC가 미국이나 제3국 등 외부에서 외국 기업과 합작회사를 설립해도 FEOC 국가 정부 관련 지분이 25% 이상이면 보조금을 받지 못한다. 중국이 주요 전기차 배터리 생산국임을 고려하면 사실상 중국을 저격한 것과 다름없다.

규제 움직임에 중국, “경제 불확실성 높아질 것”

미국의 규제 강화 움직임에 중국은 적극 반발하고 나섰다. 둥진웨 BBVA 리서치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중국 전기차 산업이) 해외 국가에 고정적으로 수출할 수 없다면 중국의 현재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 환경이 악화하고 나아가 경제 회복에 대한 가계와 기업 심리가 위축될 우려가 있다”며 “미국에서 전기차 문제가 국가 안보 문제로 확대되면 별개의 지정학적 긴장을 낳고 중국의 성장 전망에 더 많은 불확실성을 만들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국의 감정적 규제가 중국 시장을 넘어 세계 경제를 망가뜨리는 악의 축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중국 자동차 업체 투자를 유치하려던 멕시코가 미국으로부터 “주의하라”는 요청을 받은 사실을 언급하며 “중국의 차세대 성장 분야를 노골적으로 제한하려 하는 것 아니냐”고 쏘아붙이기도 했다.

중국이 전기차 규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최근 전기차가 중국 경제를 견인할 만한 신사업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실제 중국은 전기차 판매 증가에 힘입어 지난해 세계 제1의 자동차 수출국으로 부상했다. 중국 당국이 직접 지원하는 분야이니만큼 중국 입장에서 미국의 규제는 상당히 뼈아플 수밖에 없는 것이다. 중국 관영매체가 미 규제에 대해 “반시장적 규제”라고 힐난을 쏟아낸 것도 이 때문이다.

다만 일각에선 미국의 규제가 중국에 큰 영향을 미치진 못할 것이란 견해도 있다. 중국의 기술력이 상대적으로 낮은 만큼 간단한 규제에도 직접적인 타격이 불가피했던 AI 산업계와 달리 전기차 영역에 있어선 중국이 오히려 앞서 있기에 오히려 미국이 역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시장조사기관 카운터포인트 리서치 선임 애널리스트 양 왕은 “중국은 배터리 기술 등 전기차 영역에선 상당히 앞서 있는 상황”이라며 “미국의 추가적인 기술 제한이나 규제가 반도체, AI 등 영역에서 보여줬던 만큼의 영향력을 보일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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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산하는 ‘대중국 규제’, 탈중국의 ‘세계화’

전문가들은 오히려 중국이 걱정해야 할 건 국지적인 수준의 미국 내 규제가 아닌 전 세계적으로 퍼져 나가는 규제 움직임이라고 분석한다. 실제 안보를 이유로 중국산 제품 규제를 확장하는 모습은 이미 세계적 추세로 자리 잡았다. 당장 우리나라만 해도 지난해 12월 중국산 전기차 규제를 추진한 바 있다. 당시 환경부는 LFP 배터리에 ‘생산자 재활용 책임제도(EPR)’ 또는 폐기물 부담금 제도를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EPR은 제품의 제조·수입업자에게 그 폐기물에 대한 재활용 의무를 부여하고, 이를 어기면 재활용 비용 이상을 부과하는 제도다. 이에 대해 환경부 관계자는 “폐기물 처리 비용 일부를 부과하는 ‘폐기물 부담금’을 적용할 수도 있다”며 “사실상 중국 전기차 규제 목적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중국산 전기차로부터 시작된 규제 흐름은 점차 ‘탈중국’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12월 이차전지 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내놓으며 핵심 광물의 중국 의존 탈피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해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미국, EU 등 선진국은 배터리의 재사용, 재활용과 재생원료 사용 등을 온실가스 감축 수단이자 경제·안보 관점에서 자국 중심의 공급망 구축 수단으로 이미 활용하고 있다”며 “한국도 대응에 나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또한 ‘탈탄소’보다 ‘탈중국’을 우선하는 모습을 꾸준히 보여주고 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현재 전기차 공급망에 중국의 영향력이 큰 만큼 탈중국을 진행할수록 전기차 전환 및 탈탄소 실현은 늦어질 수밖에 없다”며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시행 등으로 확인 가능한 미국의 기조는 결국 탈중국을 우선하겠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 앞의 산이 더욱 높아져만 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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