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배당이 코리아 디스카운트 낳았다” 밸류업 프로그램이 증시에 불러온 변화

pabii research
밸류업 프로그램과 함께 주목받는 국내 증시 '주주환원 정책'
한국 증시 저평가 원인은 저배당? 일부 기업 '자진 배당 확대' 나서
일본의 성공 사례 벤치마킹한 정부, 시장 차이에 유연하게 대처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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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국내 상장사를 중심으로 ‘과소 배당’ 논란이 불거졌다. 정부의 ‘밸류업(Value-up) 프로그램 영향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국내 증시에 대한 저평가)에 대한 시장 관심이 높아지자, 수년 연속으로 배당을 실시하지 않은 이들 기업이 증시 저평가의 방아쇠를 당겼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다. 증시 분위기가 급속도로 변화하는 가운데, 일부 기업은 정부 움직임에 발맞춰 선제적으로 주주친화 정책을 강화하고 나섰다.

국내 증시 발목 잡는 ‘저배당’ 기조

최근 국내 증권 시장은 고질적인 ‘저배당’ 기조를 보이고 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한국의 배당 성향은 20.1%로 확인됐다. 이는 △미국(40.5%) △영국(45.7%) △독일(40.8%) △프랑스(39.3%) △일본(36.5%) 등 주요 선진국은 물론,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35.0%)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국제신용평가사 S&P글로벌에 따르면 최근 4년간 국내 상장 기업들의 총배당금 증가폭은 1.4배로, 이 역시 중국(2.4배)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저배당 기조의 원인으로는 기업의 ‘주주환원 경시’ 경영이 지목된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국내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782곳(12월 결산 법인 기준, 외국주권법인 등 제외) 중 최근 3개년 회계연도(2020~2022년) 내내 배당을 실시하지 않은 기업은 190개사(24.2%)에 육박했다. 최근 3년간 당기순이익이 모두 흑자였음에도 배당을 하지 않은 기업도 42개사에 달했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이들 기업 대부분은 대표적인 저PBR(주가순자산비율) 종목인 보험사·증권사였다는 점이다. 꾸준한 흑자를 기록했음에도 PBR이 낮을 경우, 해당 기업은 부동산 자산 비중이 높거나 수익을 주주에게 배당하지 않고 현금을 ‘축적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 같은 한국 상장사의 저배당 성향은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연결된다.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지난해 보고서를 통해 “한국 증시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받는 것은 배당금과 주주환원이 낮기 때문”이라고 직접적으로 지적하기도 했다. 실제 ‘고배당’ 기업 투자를 선호하는 외국인 투자자들은 속속 한국 증시에서 등을 돌리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04년 41.2%로 정점을 기록했던 국내 증시 외국인 투자자 비중은 지난해 상반기 26.1%까지 미끄러졌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었던 2009년 4월(26%)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선제적으로 ‘배당 확대’ 나서는 상장 기업들

한편 일부 상장사는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 발표 시기에 맞춰 주주환원 정책 강화에 나선 상태다. 저배당 기조에 대한 비판 여론을 고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국내 증시의 ‘체질 개선’ 움직임에 선제적으로 동참한 것으로 풀이된다. 밸류업 프로그램은 증시 저평가 해소를 위해 상장 기업들이 주주환원 정책을 강화하도록 ‘유도’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를 위해 당국은 차후 관련 상품을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주주환원에 힘을 쏟는 기업에 세제 인센티브 등을 제공할 예정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결산배당 공시를 낸 지난해 12월 결산법인(20일 기준) 중 차등배당을 결정한 기업은 교보증권, 교촌에프엔비, HPSP 등 14곳이다. 아직 결산 배당 공시를 내지 않은 상장사들을 고려하면 차등배당을 결정하는 상장사는 이보다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차등배당은 대주주가 본인의 배당금 전부 또는 일부를 포기해 기타 소액주주에게 양도하는 방식으로, 통상적으로 대주주보다 소액주주들에게 더 많은 배당을 제공하는 주주친화적 정책으로 꼽힌다.

특히 파세코, 새빗켐, 교촌에프앤비, 시알홀딩스, 한국알콜 등 5개 상장사는 올해 최초로 차등배당에 나섰다. 모두 밸류업 프로그램 도입 계획 발표 이후 차등배당을 공시, 정부가 만들어낸 ‘흐름’에 올라탄 사례다. 교촌치킨 운영사인 교촌F&B와 내화 요업 제품 제조업체 CR홀딩스는 지난해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각각 181.9%, 115.9% 상승했다는 점을 근거로 차등배당을 결정했다. 반면 가전제품 생산 업체 파세코(Paseco), 이차전지 리사이클링 업체 새빗켐(Sebitchem)의 경우 지난해 영업이익이 감소했음에도 불구, 차등배당을 단행하며 주주환원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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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밸류업’ 성공사례 따라갈 수 있을까

업계에서는 정부 밸류업 프로그램이 이 같은 주주친화 경영의 ‘선순환’을 강화할 것이라는 기대가 실린다. 일본 증시가 밸류업 프로그램과 유사한 전략으로 반등에 성공한 만큼, 국내 증시 역시 밸류업 프로그램을 통한 체질 개선으로 저평가 기조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 도쿄증권거래소는 지난해 3월 상장사에 외국인 투자자 진입 확대 및 증권 시장 활성화를 위해 ‘자본비용과 주가를 의식한 경영’을 요구한 바 있다. 업계에서는 이를 사실상 ‘일본판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라고 평가한다.

일본이 ‘밸류업’을 선언한 지난해 초, PBR이 1배 미만이며 자기자본이익률(ROE)이 8% 미만인 일본기업의 비율은 50% 이상이었다(도쿄증권거래소 프라임 시장 기준). 이에 도쿄증권거래소는 △PBR 1배 이하 상장사의 주주가치를 개선하기 위한 계획의 수립 및 공시 △PBR 1배 이상 및 ROE가 자기자본비용보다 높은 시가총액 상위 150개 회사를 추종하는 JPX Prime 150 벤치마크 신설 △월간 기업 지배구조 보고서 등재 등 시장 상황 개선 방안을 다수 제시했다. 

일본 산업계 역시 도쿄증권거래소의 움직임에 호응했다. 60여 개의 기업이 배당 확대, 자사주 매입 등 주주환원책에 힘을 쏟기 시작한 것이다. 이 같은 노력은 분명한 체질 개선 효과를 창출했다. 지난해 3분기 기준 도쿄증권거래소 상장 기업 중 PBR이 1배 미만인 기업은 지난 2022년 4분기 대비 180곳 감소했다. 시장 체질 개선 및 엔화 약세 기조에 매력을 느낀 외국인 투자자들은 순식간에 일본 증시로 몰렸고, 일본 증시는 34년 만에 정점으로 뛰어올랐다.

업계에서는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이 이 같은 일본의 사례를 ‘벤치마킹’했다고 추정한다. 문제는 우리나라와 일본의 시장 상황이 상당히 다르다는 점이다. 우선 한국의 경우 일본의 엔화 약세와 같은 환율 효과를 기대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일본의 경우 비교적 오너(총수)의 영향력이 작아 당국 주도의 정책 효과가 특히 컸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오너 영향력이 큰 우리나라의 경우 정부 밸류업 프로그램이 일시적 주주환원책에 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위해서는 차후 밸류업 프로그램이 기업의 구조 개혁을 이끌어낼 만한 탄탄한 ‘기둥’ 역할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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