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안뽑] ㊿혹한기에도 살아남고 싶으면 개발자 의존도를 0으로 만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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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bii research
개발자들이 회사 기술력을 더 높여주고 있지 않은 이상 40대 기술직은 잉여 인력
유지·보수만 해도 되는 서비스에 굳이 고액 연봉의 기술직을 유지해야 할 이유 없어
국내 기술직들의 취직 이후 학습 태도를 감안할 때, 기술 발전은 사실상 어렵다고 봐야
해외 솔루션보다 못한 서비스 만드는 인력들 급여 아껴야 불경기, 혹한기에도 살아남을 수 있어

이번 ‘개안뽑’ 시리즈는 컬리 김슬아 대표의 한 인터뷰 문장으로 시작됐다.

지금도 개발자만 없으면 수익성을 낼 수 있다

지난 몇 년동안 회사를 운영하면서 ‘개발 월급만 안 줘도 부담이 확 줄어들텐데’라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었는데, 김슬아 대표의 저 문장에 크게 공감이 됐었다. 그렇게 개발자들을 다 내보내고 직접 시스템을 하나하나 만들면서, 역시 개발자가 없어도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도 깨달았고, 오히려 내가 직접 작업하는 것이 개발자들을 믿고 맡기는 것보다 훨씬 더 효율적으로 업무 처리가 된다는 것도 알게 됐다. 특히, 나처럼 해외 솔루션을 쓰면서 해외 개발자나 테마, 플러그인 개발팀과 의사소통을 계속하는 사람들이라면 영어 실력 때문에라도 영어 못하는 한국인 개발자가 회사에 도움이 되질 못한다.

그간 시리즈 글을 따라왔던 가까운 스타트업계 관계자는 아래의 표현을 쓰면서 요즘 스타트업계 상황을 진단했다.

어차피 요즘 같은 혹한기에 살아남으려면 구조조정해야되는데, 개발자들을 제일 편하게 내보낼 수 있는 회사, 세일즈 팀을 마지막에 내보내는 회사가 가장 길게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개발자-안-뽑음_202312
개발자-안-뽑음_202312

기술직들을 굳이 40대 이후에도 데리고 있을 이유가 있냐?

다들 IT업계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보니 시선이 다를 수 있겠지만, 정책 기관 담당자와 빅데이터 기반 정책 분석 시스템 이야기를 하던 중에, 아래의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굳이 40대 기술직들을 데리고 있어야 할 이유가 있나? 우리 회사가 무슨 구글, 애플도 아니고, 시스템 관리만 하면 되는데

저 문장을 듣던 당시에는 ‘Technocrat(기술직 고위 관료)’들을 낮춰보는 그 정책 담당자의 표현이 매우 거북스러웠다. 조금만 전문 용어가 나와도 무슨 말인지 몰라서 쉽게 설명해달라고 그러고, 그래도 제대로 이해를 못해서 엉뚱한 이야기만 내놓는 사람들이 무슨 정책이 필요하다는 논의를 할 자격이나 있나는 반발심이 생기게 만들었을 뿐, 저 관점에 전혀 동의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국내에서 만난 기술직군 사람들 대부분이 구직을 하고 난 다음부터는 회사 시스템을 이해하는 것 이외에는 아예 다른 공부를 일절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내 생각도 바뀌기 시작했다. 내 머리 속에 있는 Technocrat들은 밤 12시에 질문 메일을 받아도 총알 답장을 하면서 수식 하나를 어떻게 해석해서 시스템에 넣느냐에 따라 전체 구조가 망가지는지 여부, 그래서 금융시장 모델이건 IT기업들의 광고 타게팅 모델이건, 회사 서비스에 치명타를 줄 수 있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따지는 사람들이었는데, 한국 기업들에서 만난 기술직군들은 그런 지식이 있다는 것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던데다, 있다는 것을 알아도 공부를 하지 않으니 무슨 뜻인지 이해를 못했었다.

몇 차례 국내 기업들의 담당자들을 만나면서 한국이 기술적으로 매우 낙후된 상태로 흘러가고 있고, 대략 1980년대에서 1990년대 사이에 기술적인 지식 축적이 멈춘 상태에서 번역 콘텐츠들로 아주 조금씩 더 지식의 세계관이 넓어지고 있는 상태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전공마다 사정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이미 대학 교과서들이 1990년대 수준을 담고 있는 만큼, 빠른 학생들이라면 학부 졸업 전에 이미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상태에서 취직 후에 회사 사정에 맞춰 어떻게 시스템이 돌아가는지 1년 안에 파악이 끝날 수 있는 수준이고, 느린 학생이어도 월급 값을 하려면 취직 후 3년 안에는 해당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끝나야 되는 수준이다. 한국 남학생이 군대 제대 후 취직해서 3년 동안 회사 시스템을 제대로 이해 못하면 나이가 30대로 들어가는데, 그간 학습 속도를 봤을 때 30대에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는 경우들은 정말 드물더라. 더 이상 학습이 안 된다는 뜻이니 내보내야 되는 직원, 잘못 뽑은 직원이 된다.

학습 안 한지 10년, 굳은 머리, 높은 연봉, 과거 기술 의존성

국내에서 개발자라고 불리는 기술직군의 상황도 다른 기술직군과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의 기업 사회 구조가 고급 기술 개발을 통해 글로벌 최상위권의 역량을 갖춘 기업으로 성장하고, 그에 맞춘 상품 판매를 도전하는 발전 중심형으로 돌아가는 대신 외부에 공개된 내용을 빠르게 베껴서 붙여넣고 그 시간 격차를 이용해서 마진을 남겨먹는 후발주자들의 추격 중심형으로 돌아가는 상황인데, 제조업계나 IT업계나 그런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해외에서 새로운 제품이 나오면 그걸 먼저 도입한 회사가 막대한 학습 비용을 치르고 난 다음에 인원을 빼가거나 하는 방식으로 단기간 추격을 하는 구조만 돌아갈 뿐이다. 우리나라 개발자들이 쓰고 있는 각종 프레임워크, 개발 플랫폼, 프로그래밍 언어 등등, 그 어느 것에서도 한국인이 기여하는 경우가 없다는 것에서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인력들 스스로도 학습 역량이 영미권 최상위권 인재들보다 크게 떨어지는 상태이기 때문에 감히 도전하지 않는다. VC들 면담을 가보면 “얼마나 빨리 만들 수 있나?”는 질문을 굉장히 자주 받는데, 이미 누군가 만들어 놓은 상품을 비슷하게 구현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만들 수 있나?”는 질문이 먼저 나와야 하지 않을까? 박사 학위 과정 중에 논문을 못 쓰고 포기하는 경우들이 매우 많은데, 영미권에서는 “무슨 연구하나?”, “연구 성과 나오면 어떻게 쓰일 수 있나?” 같은 질문 위주인 반면, 한국에서는 “몇 년 만에 졸업하냐?”는 질문이 먼저 나오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당시 논문 완성도를 높이느라 매일처럼 스트레스 속에 살던 연구실 동료들이 ‘몇 년(How long)’이라는 문구에 ‘언젠가는(Someday)’과 함께 졸업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뜻을 담아 ‘희망한다(Hopefully)’라는 단어를 덧붙였는데, 한국과 해외의 기술직에 대한 역량 요건에 대한 인식 차이가 잘 드러난 표현들일 것이다.

연구 역량을 쌓아가며 실력을 기르는 업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자격증’이라고 생각하는 한국식 사고방식은 기술직군 전체에 뿌리깊게 박혀 있다. 때문에 ‘자격증’을 최소한의 노력으로 따기만 하면 그 다음부터는 그 자격증을 이용해서 돈 벌이에 쓰는 관점으로만 활용하고, 그렇게 연구 활동 대신 외부 활동에 힘을 쏟는 인력들에게 비전공자인 정부 관계자, 기업 인사팀 관계자들이 비용을 지불해주는 상황이니 기술적 도전을 하는 인력이 양성될리가 없는 상태인 것이다.

신규 진입하는 인력들도 ‘코딩 테스트 학원’ 같은 주입식 교육 위주

한국의 ‘자격증’ 혹은 ‘라이선스’ 문화는 기술직군으로 신규 진입하는 인력들의 사고방식에서도 자주 드러난다.

보나마나 수학 못한다는 소리겠지. 그런거 다 필요없고, 코딩 테스트만 통과하면 된다

라는 표현을 국내 초명문대 중 하나인 K대 학생이 학생들 커뮤니티에 자신있게 읊을 수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코딩 테스트를 학원에서 쪽집게 과외를 받아서 통과하건, 본인의 개발 내공으로 통과하건, 어차피 대기업에 취직할 수 있으면 똑같다고 생각하고, 회사에서 업무를 잘 하는 것과 관계없이 그 회사에 취직을 했기 때문에 자격증을 땄다는 관점으로 접근한다.

이미 대학 입시, 혹은 고교 입시부터 명문고, 명문대 입학을 하기만 하면 모든 것을 다 누릴 수 있다는 사고 방식이 한국 사회에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S대를 입학했으면 학점을 얼마나 받건, 친구들 사이에서 머리 나쁜 애라고 무시를 당했건, 수업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했건, 그런 개인 역량의 문제는 뒷전이다. S대를 합격했다고 자랑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 사회가 베끼기 위주로 시스템이 돌아가는 가장 밑바닥에는 주입식 교육이 있고, 그 주입식 교육은 ‘자격증’의 관점으로 대학 입시, 구직 활동을 평가하는 사회적 평가 시스템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입식 교육을 받은 개발자들을 뽑으면 그들의 사고력 한계 때문에 남들이 해 놨던 사업을 베끼는 것 이외에 다른 업무를 할 수가 없다. 회사 서비스에 조금만 문제가 생겨도 본인의 이해력을 바탕으로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보려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 질문부터 올리고, 대답을 공짜로 열심히 해 주는 곳들만 찾아가다 시간을 허비한다. 아니면 비싼 유료 서비스를 쓰는 것이 대안이라는 황당한 답변을 내놓기도 한다. 판교의 모 게임사가 게임 유저 행동을 최대한 자세하게 기록하는 DB를 구축해야 한다며 AWS 비용을 3배 이상 썼던 사례를 예전에 언급한 적이 있었는데, ‘정보 균등성(Information equivalence)’라는 수리통계학적 관점에서 보면, 1년 단위로 투자하는 주식 투자자가 매달의 주가 수익률 12개월치를 묶는 것과 매일의 주가 수익률 365일치를 묶는 것에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과 같은 관점으로 그 회사는 거꾸로 AWS 비용을 절반으로 줄일 수도 있었다.

혹한기에도 살아남고 싶으면 개발자 의존도가 0인 시스템을 운영해라

이런 기술직군들의 사고력 부재를 지난 6년간 경험하면서, 한국에서는 개발자를 뽑지 말아야겠다, 최소한 개발자가 나가더라도 겁이 안 나는 시스템, 즉 ‘개발자 의존도 0’인 시스템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어차피 대한민국 기술직군들의 99.9%는 사고력 기반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기술적으로 인정받는 고급 시스템을 만들 능력이 없다. 그들 중 최상위권에 해당하는 SKP 컴퓨터 공학과 출신들이 밤을 새어가며 최신 코드, 검증된 코드로 시스템을 만들어도, 해외 부트캠프 출신의 비전공자들이 워드프레스 같은 솔루션을 써서 만든 시스템보다 나을 것이 하나도 없는 시스템이 나온다. 서비스 개발이 끝나고 운영 개발을 위해 필요한 인력 필요와 개발 기간을 생각해보면, 주입식 교육을 받은 인력들로 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개발자 의존도를 높이고 향후 수년, 수십년간 개발자들에게 막대한 급여를 지급하는 회사가 되는 것을 피할 길이 없다.

당신이 주식 투자자라면 개발자 100명을 상시 고용해야 운영 개발이 되는 회사와 외주 개발자들 2-3명을 주기적으로 불러서 시스템 관리만 시켜도 되는 회사 중 어느 쪽에 투자하겠는가? 개발자 100명을 고용해서 기술 혁신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글로벌 최상위권 기술력을 갖춘 회사가 아니라, 남들이 해 놓은 서비스를 고작 따라가기에 급급하다면?

한국에서는 왜 40대 기술자들이 명예퇴직을 당하게 되느냐? 기술직군이 혁신을 통한 기업 가치 창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시스템 운영을 위한 최소 인력을 최소 비용으로 관리하고 싶은 것이 기업가들의 욕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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