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영국처럼 채권시장 위기 빠질 수도” CBO의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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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회예산처(CBO) 필립 스와겔 처장 FT 인터뷰
美 국가 부채 증가로 18개월 전 영국 위기 재현 우려
미국이 2~3년마다 부도 위기 겪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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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스와겔 처장 사진=미 의회예산처(CBO) 홈페이지

미국 연방정부의 부채 위기가 대규모 감세안으로 전 세계 금융 시장에 큰 충격을 줬던 영국 리즈 트러스 전 총리 재임 시절과 맞먹는 정도의 혼란으로 번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투자자들이 미 국채를 외면하면서 가격과 반대로 움직이는 국채 수익률이 급등하고, 미 달러 가치는 추락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부채비율, 2054년 166% 전망

미 의회 산하 독립 재정분석기구인 의회예산처(CBO)의 필립 스와겔 처장은 26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뷰에서 “미 연방정부의 부채 부담은 전례 없는 궤도에 들어섰다”며 “ 나랏빚 급증세를 무시한다면 트러스 전 영국 총리 때와 같은 종류의 위기가 재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스와겔 처장은 “물론 당시 영국에선 정책 입안자들이 (선제적으로) 취한 조치에 대한 시장 반응이 나타났던 것이었고, 미국은 그런 상황에 이르진 않았다”면서도 “고금리로 차입 비용 규모가 2026년까지 1조 달러(약 1,300조원)까지 늘어남에 따라 채권 시장이 급격하게 뒤틀릴(snap back) 수 있다” 고 전망했다.

CBO는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율이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기록했던 역대 최고치인 116%를 2029년께 넘어선 뒤 2054년 166%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내용의 장기 경제 전망을 전날 발표한 바 있다. 지난해 말 기준 미국의 나랏빚 규모는 26조2,000억 달러(약 3경5,200조원)로, GDP의 97%에 달한다. GDP 대비 재정 적자 비율은 향후 10년간 6% 수준에서 유지될 것이란 관측이다. 실제 미국은 부채 문제를 이유로 신용등급이 강등되기도 했다. 지난해 8월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가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하향했고, 같은 해 11월 무디스는 AAA 등급을 유지하되 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끌어내렸다. 두 평가사 모두 조정 배경으로 미국의 재정 건전성 악화를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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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즈 트러스 영국 전 총리/사진=게티이미지뱅크

무분별한 감세 정책으로 최단기간 사임한 ‘리즈 트러스’ 英 전 총리

트러스 전 총리는 영국 역사상 최단 기간에 물러난 비운의 인물이다. 트러스 총리는 집권하던 2022년 9월 초만 해도 영국 보수당의 상징인 마거릿 대처 전 총리의 2020년대 버전이라는 칭호를 꿈꿨으나 경제 위기 중에 감세정책 실패로 지지층이 붕괴하면서 취임 45일 만에 사임이라는 역사상 전무후무한 사건의 주인공이 됐다. 지금까지 최단명 총리는 19세기 초반의 조지 캐닝으로, 취임 119일 만에 사망한 경우였다.

트러스 총리는 50년 만에 최대 규모의 감세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시장과의 사전 교감이 없었던 데다 세수 손실 확보 방안도 제시하지 않았는데, 결국 이것이 화근이 됐다. 450억 파운드(약 76조원) 규모 감세안이 포함된 미니 예산 발표 직후 달러 대비 파운드화 가치는 사상 최저치로 폭락했고, 이에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영국의 신용등급을 줄줄이 하향 조정했다. 결국 중앙은행인 영국은행(BOE)이 개입해 ‘무제한’ 채권 매입을 선언하면서 채권 위기가 가까스로 진정됐다.

국가부채 한도와 디폴트

다만 미국의 부채 비율이 높다고 해서 당장 미국 경제가 큰 불황에 빠지거나 미국의 국력이 약해지는 것은 아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미국 법률로 지정된 연방 정부의 ‘부채 한도’다. 미국 국가부채는 이미 지난해 1월 이 한도에 도달했다. 미국 부채 한도의 역사는 제1차 세계대전 때인 19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까지만 해도 미국은 정부가 돈을 빌리려면 건건이 의회 승인을 받아야 했으나 미국이 전쟁에 개입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번거로운 절차를 줄이고자 정부가 의회 승인 없이 빚을 낼 수 있도록 하되 일정한 제약을 뒀다. 그것이 바로 부채 한도다.

부채 한도는 다른 나라에는 거의 없는 특이한 제도다. 덴마크에 이런 제도가 있지만 부채 상한이 국가부채의 7배에 달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호주는 2007년 부채 한도를 도입했다가 2013년 폐지했다. 이밖에 GDP 대비 재정적자나 국가부채 비율을 법으로 정한 나라는 있지만, 차입 규모 자체를 제한하는 나라는 미국이 유일하다.

지금까지 한 번도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빠진 적이 없다는 것이 미 정부의 공식 입장이나, 미국은 영국과 전쟁을 치르던 1814년 국채 부도를 낸 일이 있다. 1979년에도 1억 달러에 달하는 국채를 제때 갚지 못했다. 이후 미국 디폴트 우려가 가장 심각하게 제기된 때는 2011년이었다. 그해 8월 부채 한도 조정이 늦어지자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미국의 신용등급을 최고 등급인 AAA에서 한 단계 아래인 AA+로 낮췄다. 사상 초유의 미국 신용등급 강등에 주요국 주가가 급락하기도 했다. 하지만 달러 가치와 미 국채 가격은 상승(금리 하락)했다. 미국 경제가 흔들리자 투자자 사이에 리스크 회피 심리가 확산하면서 오히려 달러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진 것이다. 미국이 일시적으로라도 디폴트에 빠진다면 그 후폭풍은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미국이 위기에 빠지는 것만큼 세계 경제에 큰 리스크 요인은 없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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